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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겨울, 그리고 환자

천양곡 정신과전문의

화씨 0도 이하까지 내려간 시카고의 2월 초순 도심지인 미시간 거리엔 아직도 반짝반짝 바람에 흔들거리는 조그만 이탈리아 제 등불들이 상점 안을 비쳐주고 있었다. 밖은 온통 하얗다. 골프장의 페어웨이ㆍ퍼팅그린ㆍ연못ㆍ모래ㆍ나무 등이 하얀 물감으로 목욕한 듯 찬란하다. 눈이 없는 곳의 사람들이 측은하게 느껴진다. "겨울은 병이다"란 프랑스 시인 뮈세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

문득 옛날 통화가 떠올랐다. 시카고에 정착한지 얼마 안 됐을 때 LA 친구한테 전화가 왔었다. "야 왜 하필 시카고로 떨어졌냐! 지옥 같은 그곳에 있지 말고 이리로 이사와라." 그러나 눈 오는 겨울 눈사람 만들고 썰매 타고 난로 불에 밤 구워먹던 어린 시절의 회상은 놓아버릴 수 없는 보물이다. 신체를 살리는 게 숨이라면 추억은 혼을 살린다는 어느 현인의 말씀이 이해가 된다.

꽁꽁 얼어붙은 동장군과 싸우며 출근해 보니 부자가 함께 오피스에 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말싸움이 오간다. 부자간의 대화를 누그러뜨리려고 "어떻게 지내느냐"는 나의 질문에 * 아들:담배 피고 음악 듣고 TV보고 있지요. * 아버지:네 인생 참 편하구나. 난 중학생 때부터 나이 70이 넘도록 일 했고 네 나이쯤 때는 태평양 섬에서 잽(일본군)과 싸웠다.

환자는 정신 분열증의 젊은 남자다. 정신병을 가진 것은 마치 전쟁 중에 있는 거와 같다. 싸움터는 들판이 아닌 마음 속이다. 병사는 가끔 쉴 수도 있지만 환자는 매일 쉬지 않고 싸워야 한다. 그래서 가족들의 도움이 무척 필요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정신병 자식들을 잘 돌봐주지만 가끔 환자 치료에 지장을 주는 독성부모ㆍ친지들도 있다. 프로이트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로 3가지를 꼽았다. 첫째 자식 키우는 일 둘째 나라 다스리는 일 셋째는 정신 분석하는 것이라 했다.

개인 소견이지만 자식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식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대화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이다.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부모가 제지함은 당연하나 혼자 다닐 수 있는 나이인데도 매사 간섭하는 것은 과잉 보호라 할 수 있다. 이런 과잉보호는 정서적으로 불안하며 훗날 빈새둥지증상(Empty Nest Syndrome)을 심하게 나타낼 수도 있다.

과잉보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 역시 성인이 돼서도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사회 적응 능력이 부족하다. "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란" 말을 자주 쓰지만 실은 부모 도움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소외감을 느껴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의 독립을 막을 수도 있다.

사춘기를 지나 제 갈 길을 찾아가는 분리 개인과정을 지연시키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자존심과 자신감은 항상 낮게 마련이다.

한 번 벌 주면 일곱 번은 상을 주어야 벌받은 아픔을 상쇄할 수 있다고 한다. 평생을 통해 지속되는 우리들의 자존심은 어렸을 때 어떻게 자랐느냐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아버지한테 항상 꾸지람 듣고 사는 내 환자가 너무 불쌍하다.

아무리 정신 분열증 환자라도 나름대로 자존심은 있는 것이다. 가끔 아버지를 따로 불러 말해보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계명을 주실 때 이스라엘 사람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 불평하셨다. 내 환자의 아버지도 누구 못지 않게 정말 답답하고 고지식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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