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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과 오만에 자연도 사람도 병들다 '알래스카'

신현식 기자의 대륙 탐방

마지막 미개척지인 알래스카를 처음 찾았던 것은 1989년 7월이었다. 7일 간의 짧은 출장. 앵커리지에서 위티어(Whittier)로 이동해 유람선을 타고 발데즈(Valdez)로 향했다. 바다에는 빙하가 떠다니고 각종 해양 동물들이 환영하듯 나타나 따라오다 사라졌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콜롬비아 빙하는 거대했다. 우뢰같은 소리를 내며 유빙 조각들을 떨어 뜨리고 있었다. 빙하는 신비스런 푸른색을 입고 있었다. 도시 인근의 산들도 온통 눈으로 덮여 있는 설국이었다. 한여름인 7월에도 두꺼운 외투를 입어야 했고, 백야로 늦은 밤에도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서너 시간의 짧은 밤이 아쉬웠다. 상쾌한 공기는 지친 몸과 마음을 정화해 주는 느낌이었다.

당시의 기억 때문일까, 27년 만에 길고 험하기로 유명한 알래스카 하이웨이를 7일 간이나 달려 알래스카에 도착했다. 미국의 어느 지역도 알래스카만큼 신비한 매력을 가진 곳은 드물다. 알래스카는 도시생활에 지쳐 대자연을 동경하는 나를 자극하고 꿈꾸게 한 곳이다.

과거 알래스카는 금을 캐 부자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개척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행객들의 모험심과 호기심을 채워주는 곳으로 변한 듯 했다.



앵커리지의 대형마트에서 만난 80대 한인부부는 이곳에서 30년을 살았다며 부부는 곧 아들이 있는 시애틀로 이주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동안 알래스카도 많이 변했다고 한다. 인구 유입과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크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산에 눈이 보이질 않았다. 바닷가의 유빙도 온데간데 없다. 관광지에는 관광버스가 줄을 이었다. 그중에는 한국, 중국인들도 많았다. 관광산업이 금광을 대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물가는 본토의 두배에 가깝고 한철 장사라 그런지 바가지 상혼도 극성을 부렸다. 관광지 어디나 돈벌이에 혈안이 된 모습이었다. 라스트 프론티어가 되어 꿈을 찾아 갔던 알래스카를 떠나면서 인간의 오만과 욕망으로 멸망한 지구 이야기를 다룬 공상영화 '혹성탈출'을 떠올렸다. '아디오스 알래스카.'

◇알래스카는

알래스카는 1867년 미국정부가 재정이 피폐해 진 러시아 제국으로 부터 에이커당 2달러도 안되는 720만 달러에 매입해 미국 영토가 됐다.

당시 여론은 알래스카 매입을 주도한 윌리엄 수어드 재무장관을 비난했다. 그러나 연어떼와 금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황금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고 1880년 대에는 골드러시가 절정을 이뤘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대규모 군사 기지가 생겨 군인들이 이동해 왔고, 육상 보급로 확보를 위해 알래스카와 캐나다를 잇는 하이웨이도 개통했다. 이 도로는 전쟁 후 알래스카 오지 개발에 공헌을 했고, 관광산업에도 기여하고 있다.

알래스카는 1959년 미국의 49번째 주로 승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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