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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컵 속의 손가락

[LA중앙일보] 발행 2007/03/15 미주판 19면 기사입력 2007/03/14 18:51

김완신 문화부장

집 아이가 다섯살 때쯤인 오래 전의 일이다. 키가 작은 아이가 냉장고에 붙어 있는 물과 얼음이 나오는 구멍까지 손을 뻗으려면 까치발을 해야 겨우 닿았었다.

한번은 냉장고 앞에서 아이가 머리 위로 컵을 높이 들고 물을 받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런데 아이는 한 손으로 컵을 들고 다른 손의 손가락을 컵에 넣은 채 물을 받고 있었다. 장난 정도로 알고 무심히 지나쳤는데 그후로도 그런 모습을 여러번 보게 됐다.

결국 아이를 불러 놓고 야단치듯 물었다.

"물을 받으면서 왜 더럽게 컵 안에 손가락을 넣어."

그때 나온 아이의 대답은 의외였다. 물을 받을 때 컵에 물이 어디까지 찼는지 보이지 않아 자주 물이 넘쳐 쏟았졌는데 손가락을 넣으면 물이 컵의 어디쯤 찼는지를 알 수 있어 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 키 작은 아이의 '눈높이'는 생각하지 않고 지저분하게 손가락을 컵에 넣는다고 야단친 것을 반성했다. 아이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부모의 눈높이로 판단한 것이다.

지난 12일 한인가정상담소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 거식증 자해 등의 문제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다고 한다. 또한 이런 문제들의 원인은 아이의 능력이나 개성을 무시한 부모들의 과잉 기대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는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확연히 구별된다. 부모의 눈높이와 아이의 눈높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 있다. 부모라고 해서 아이의 눈높이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세대'라는 상하 구분은 있지만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에는 서열이 없다.

세상의 아이들은 모두 다르다.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에 차이가 있다. 이를 무시하고 부모의 잣대와 생각으로 아이들의 장래를 재단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더욱이 교육의 목표가 전인적 인격체의 양성이 아니라 경제활동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기 위한 과정 정도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심화될 수 밖에 없다.

플라톤은 '각각의 개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끌어내는 과정'을 교육이라고 했다. 이는 잠재된 능력과 재능을 발굴하는 것을 의미한다.

피에타상과 다비드상을 조각한 미켈란젤로에게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그처럼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는가"를 물었다. 이 질문에 미켈란젤로는 "조각의 재료인 대리석 안에는 이미 원래부터 존재하는 형상이 있고 조각가는 그것을 끌어내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내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리석 속에는 처음부터 다비드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이를 드러내는 작업을 했을 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대리석 안에 숨겨져 있다가 성인이 되어 세상에 나올 아이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부와 명예를 거머쥔 모습일 수도 있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보통사람일 수도 있다. 조각칼을 든 부모는 미켈란젤로의 말처럼 원래 담겨져 있던 것을 드러나게 다듬는 사람이지 결코 없던 것을 만들거나 바꾸는 사람은 아니다.

조각칼을 들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한번쯤은 생각해 보자. 들판에 씨를 뿌리며 살려는 아이를 세상의 부귀를 좇는 아이로 바꾸려고 소중한 조각들을 쪼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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