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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김·이·박씨가 전국민의 반인 나라

[LA중앙일보] 발행 2016/09/16 미주판 10면 기사입력 2016/09/15 22:38

이종호/OC본부장

"너만 잘났냐? 나도 잘났다." 드러내 놓고 말은 안 해도 미국 사는 한인들이라면 누구나 가져 본 생각일 것이다. 비록 아메리칸드림이 사라져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빽'이나 학벌 등과 상관없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든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살 수 있는 곳이 그래도 이곳 미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태생적 조건이나 신분(?)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성씨와 본관도 그 중의 하나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이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성씨는 5582개다. 이중 가장 많은 성씨는 김씨다. 무려 1069만명으로 전체 한국 인구 5107만 명의 21.5%에 이른다. 다음은 이씨로 14.7%, 박씨도 8.4%나 된다. 한국인의 거의 반에 육박하는 44.6%가 김이박씨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김이박씨가 많을까? 그들이 다른 성씨보다 월등히 자손을 많이 두었기 때문일까? 성씨의 기원이나 역사적 배경을 알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한국의 토착 성씨는 신라 왕족인 박, 석, 김씨 외에 신라 6성(六姓)이라 해서 이, 정, 최, 손, 배, 설씨 정도 뿐이었다. 물론 고구려나 백제 계통의 성씨도 있었지만 신라 통일과 함께 거의 소멸되었다. 이후 고려가 건국되면서 사성(賜姓)정책이라 해서 태조 왕건이 개국에 힘을 보탠 지방 호족이나 귀순 장수들에게 성을 하사했는데 지금 많은 성씨와 본관이 이때부터 시작됐다(필자의 성인 벽진이씨도 신라 말 지금의 경북 성주군 일대 벽진 태수(太守)를 지내다 고려 개국에 큰 공을 세운 이총언 장군이 시조다).

그럼에도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성을 가진 사람은 극히 적었다. 당시 인구 구성을 보면 양반 지배계층이 10%, 역관, 의관, 향리 등 중인이 10%, 그리고 일반 백성인 양인(良人)이 30%였다. 나머지 50%는 노비였다. 그러니까 15~16세기까지도 이름만 있었지 성까지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15%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신분 사회가 고착화되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과 본관을 가진 양반이 되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2014년 출간된 고려대 권내현 교수의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이란 책은 이런 조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권 교수는 17세기 후반부터 200년간 경남 산청의 김수봉이라는 노비와 그 후손들이 납속(納贖)과 족보위조를 통해 김해김씨 가문으로 변신해 가는 과정을 추적했다. 납속이란 국가 재정이 어려울 때 나라에 돈을 내고 신분 상승을 허락받는 것을 말한다. 노비가 그렇게 돈을 내고 양인이 되는 것을 면천종량(免賤從良)이라 했다.

권 교수에 따르면 17세기 조선 전체 인구 중 약 40%가 노비였지만 200년 뒤인 19세기 중반이 되면 전 인구의 70% 이상이 양반이 됐다. 수많은 노비들이 돈으로 신분세탁을 하면서 성씨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도망간 노비들이 신분을 속이기 위해 새로 성을 만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럴 때 가장 선호했던 성씨가 바로 김이박씨였다는 것이다.

미국에 살다보니 이젠 한자로 성을 쓸 일도 별로 없고 본관을 따질 일도 거의 없어졌다. 그렇지만 아무리 미국에 살아도 '근본도 모른다'는 말은 듣지 않아야겠다. 추석 같은 명절 때 한번 쯤 내 성씨의 뿌리도 찾아보고 훌륭한 조상님들의 행적도 뒤적여 보는 것도 그래서이다. 그렇더라도 내 조상만 잘났네 하는 착각은 말아야겠다. 누가 조금 부족하다고 마구 무시할 일도 아니고, 내가 조금 낫다고 그리 우쭐댈 일은 더욱 아니다. 어차피 성씨의 뿌리를 따져 올라가면 나와 너, 우리네 조상님들은 모두가 비슷한 처지였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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