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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할 수 없이 왔다, 할 수 없이 간다

[LA중앙일보] 발행 2016/09/20 미주판 28면 기사입력 2016/09/19 20:05

박재욱 / 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웃기고 자빠졌네.'

개그우먼 김미화가 미리 써놓은 자신의 묘비명이란다. 가히 '김미화스런' 개그다.

희곡작가 버나드 쇼의 비명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죽음 앞에서도 저토록 넉넉하다니.

'깨우지 마시오!' 밤낮없는 '위대한 전진'으로 평생 처음(?) 숙면에 든, 언론재벌 테드 터너의 비명이다.

본의 아닌 결례에 대해 정중히 용서를 구한 작가 헤밍웨이의 비명이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합니다.'

시공을 초월해 '영원한 현재'를 살고자 꿈꾼, 영적스승 오쇼 라즈니쉬의 비명이다. '태어나지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다만, 지구라는 행성에 잠시 다녀갔을 뿐이다'

가혹한 세상, 절통의 삶이었음에도 '천상' 시인이었든 천상병의 비명은 그의 시 '귀천'의 일부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여기, 이름을 물 위에 새긴 사람이 잠들다' 영국의 천재시인 존 키츠의 비명이다.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의 삶을 일찍이 통찰했다는 건지, 무소유의 고결한 삶을 살았다는 건지 도무지 헷갈리는 묘비명이다.

16세기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사라지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인생무상을 비로소 눈치챈 비명이다.

'괜히 애쓰지 마라' 미국 작가 부코우스키의 비명이다. 그는 저항의 70년대, 무한경쟁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애써 살 일이 아니라며, 세상과 숱한 길항의 삶을 살다, 자신의 장례를 어느 스님에게 부탁하고 떠난다.

그러나 괜히 애쓰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괜히 왔다 괜히 가버린 스님이 있다.

걸레스님 중광(2002년 몰) 장례를 집전하면서, 망자가 법문 보다 노래를 더 좋아할 것이라며 '돌아와요 부산항'을 불러 제켜, 대중을 아연실색, 포복절도케 했다.

또한 취중, 자신의 배설연장에 붓을 매달아 그림을 그리는 등, 엽기적인 수많은 만행(?)을 저질러, 대책 없는 '골통'스님으로 종단에서 승적을 박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천연한 익살과 세상을 비튼 풍자, '허튼소리'들은, 그것들의 끝머리에 묻어난 허허로움과 사람에 대한 순정으로, 세인을 웃으며 울게 만들었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는 의지와 열망으로 구축한 그의 독특하고 파격적인 예술세계는 먼저, 영국 등 외국에서 화답해옴으로써, '동양의 피카소'로 자리매김한다.

자칭 세상을 닦는 '걸레스님'이라며 무애의 자유를 한껏 체현한 그는, 자신을 제사 지내는 퍼포먼스로 세상을 질펀하게 휘저은 삶을 두고, '괜히 왔다, 간다.'

누구나 생의 끝자락에서면, 실한 말씀 한 꼭지씩 남기려 한다. 여보게! 나는 저승 갈 때 무얼 두고 가지?

소쿠리에 물을 퍼 담듯, 괜한 용만 쓰며 살아온 나에게, 남겨둘 청사에 길이 빛날 한마디야 무에 있을 리가 만무할 터. 허나 이래봬도 이 몸은 그 옛날 아득한 옛적 정승판서의 자손으로, 세연의 끈을 놓을 때를 위해 나름, 심중에 비장해둔 한마디가 있으니, 이참에 후딱 찍어놓고 볼일이다. 참으로 이 몸은, "할 수 없이 왔다, 할 수 없이 간다."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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