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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백 칼럼]낭만주의 최후의 보물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2번’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곡이다. 이는 KBS 클래식 FM의 설문조사 결과다.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이다. 기존에 있던 피아노 협주곡과는 달리 러시아의 강렬하고 전통적인 멜랑콜리의 이미지를 잘 표현한 곡이다. 그는 쇼팽과 리스트의 영향을 받았고 20세기 마지막 낭만파에 속하는 작품을 선보인 작곡가로 불린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피아노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피아노와 관현악의 협주곡이 다수 작곡되었다. 그 이후 모차르트의 27개의 피아노 협주곡은 많은 작곡가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 Eb장조, S.124’,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 2번’,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 2번’ 등은 현대인들에게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명곡으로 꼽을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에서 최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기도 하였지만, 1917년 혁명이 일어나자 가족과 함께 조국을 등지고 개척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1935년에 미국에 정착한 라흐마니노프는 연주자로서 더 활발한 활동을 하였는데 베토벤과 슈베르트, 쇼팽과 그리고 등 다양한 피아노 프로그램으로 리코딩을 시도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작곡가로서의 활동은 줄어들게 되었다.

그즈음 피아니스트 올가 사마로프는 라흐마니노프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창의적인 음악성을 가지고 매우 따뜻하고 감성적인 색상을 표현하는 연주자이다.” 실제로 자그마치 30cm 달하는 커다란 손을 가진 그는 피아노 건반을 자유로이 연주할 수 있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늘 화려한 연주를 선보였고, 콘서트홀의 청중은 그의 초인적 기교에 완전히 열광했다고 말한다. 작곡가의 삶보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얻고 부유한 삶을 영위했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의 혹독한 연주 스케줄은 그를 만성적인 피로감에 시달리도록 만들었다. 또한 내면에는 끊임없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였고 동시에 이민자로서 회의감을 가졌음을 그의 말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 정떨어지는 나라에는 미국인들만 들끓는군요. 그들은 죽을 때까지 일만 하려는지, 비즈니스를 외치면서 사람을 들볶고 강행군시키고 있소. 나는 지쳤고 성격도 많이 나빠진 것 같소.”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낭만주의 음악은 쇠퇴하고 현대음악이 개선되기 시작하였다. 녹음기가 발전하면서, 1939년에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녹음하게 된다. 그가 직접 녹음했던 협주곡은 웅장하고 감정의 심연까지도 표현해낸 풍부하면서도 오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생명력 있는 음악이었으리라….
 
그는 20세기의 마지막 낭만주의 음악을 끝까지 이끌던 거장 중 하나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이제는 인터넷과 다양한 웹 스트리밍을 통해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 1, 2번’,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쇼팽 발라드’ 등 최후의 낭만주의의 소리와 감각들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리코딩을 하나씩 들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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