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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리더십의 위기와 상류

[LA중앙일보] 발행 2016/09/27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9/26 20:40

안유회 / 논설위원

최근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한인 김명훈씨가 쓴 '상류의 탄생'이다. 이 책의 서문을 채 다 읽기도 전에 오래 전 동부 출장 취재 때 만난 한인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유학생 출신으로 뉴욕주립대에서 미국사를 가르치는 그 교수는 한국의 명문대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 도서관에서 받은 충격을 털어놓았다.

"서가에 러시아 혁명사는 넘쳐나는데 미국 혁명사는 거의 없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관한 책이 너무 없었어요. 아니, 한국의 국익에서 미국만큼 중요한 나라가 또 있습니까? 한국에 미국만큼 영향을 미치는 나라가 있습니까? 그런데 한국의 중추가 될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미국을 안 가르치면 한국의 국익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교수가 말한 '미국 혁명(American Revolution)'은 한국에서 교육받은 이들에게 낯선 단어다. 미국 독립전쟁이라 배웠기 때문이다. 미국 혁명은 러시아 혁명과 함께 20세기를 규정한 사건이다. 하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하나는 부르주아 혁명으로 왕정을 끝내며 20세기를 이끌었다.

'상류의 탄생'은 오래 전 한인 교수의 우려에 대한 어떤 답으로 읽혔다. 코넬대 영문학과와 컬럼비아대 예술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과 한국에서 기자로 일했고 연방공무원을 지낸 저자는 이런 답을 하기에 적임자로 보인다.

이 책에는 미국과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리더십 위기의 근원을 보는 실마리를 준다. 우리는 지금 리더십 퇴조를 목격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를 바라보는 역대급 비호감이 그 상징이다. 이는 동시에 정치 전반에서 상류의 정신이 퇴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는 민심의 반영이기에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도 상류 정신이 퇴조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저자는 미국 상류의 정신을 "남부럽지 않은 자산가들이 오로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공직에 출마하거나 공익성 사업에 뛰어드는 전통 … 자존심의 차원에서라도 물욕에 얽매이지 않는" 것으로 본다. 국난을 극복한 뒤 절대권력을 놓고 농장으로 돌아간 로마의 킨키나투스를 인생의 모델로 삼아 대통령 퇴임 후 농장으로 돌아간 조지 워싱턴부터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등이 다져놓은 것이다.

"민주적 가치와 청렴성, 신뢰를 지키며 민주주의 국가의 정신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건국의 아버지가 세운 정신은 제도와 생활에 스며들었고 "돈과 사회적 지위의 유혹에 쉽게 물들지 않는 완고한 부류"인 중산층을 낳았다.

그래도 상류의 전통이 남아있는 미국은 여전히 튼튼하다. 이 정신으로 대공황 등 큰 위기를 넘었다. "상위 0.01%의 특권층이었지만 서민 편향 정책으로 서민에게 용기와 의욕을 심어주려 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의 늪에 빠져있던 1933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밖에 없다'는 유명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금융업자는 우리 문명의 신전의 높은 자리에서 도망쳤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신전을 고대의 진리로 복구시킬 수 있습니다. 그 복구 작업의 척도는 우리가 한낱 금전적 이익보다 더 숭고한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반영시키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이 연설은 금융위기 이후 여전히 경제난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지금에도 울림을 준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한국에 화두를 던지려 한다. 저자는 한국이 그 어느 때보다 미국화가 넓고 깊게 진행됐지만 미국의 정수를 모른다고 진단한다. 미국의 겉은 배웠어도 속은 배우지 못했다. 스스로 가치체계를 세우지도 못하고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미국을 제대로 파악도 못한 결과는 갑질과 헬조선이라는, 상류 정신과 리더십의 퇴조다.

민주주의의 답은 최종적으로 투표다. 누가 더 상류의 가치를 갖고 있는가? 투표 전에 던질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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