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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동생 유해라도 봤었으면…”

한국전 참전 당시 쌍둥이 동생 잃고
65년간 찾아 헤맨 형 빈센트 크렙스
지난 24일 하늘나라 동생 곁으로

정확히 65년 10개월. 군대 가기 전엔 하루 이상 떨어 전 본 적이 없는 쌍둥이 동생을 찾아 헤맨 날수다.
 
1949년 쌍둥이 형제는 19살의 나이로 미군에 입대했다. 이듬해 발발한 한국전쟁은 형제의 운명을 갈라서게 했다. 한국전 발발 2개월여 만에 부산 함락 위기를 맞았던 8월 말 쌍둥이 형제는 부산항에 도착했다. 아마도 전쟁 이후 한국에 온 미군 중 거의 첫 부대다.
 
형이 트럭 전복으로 상처를 입고 일본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동생은 북진을 거듭했다. 운명의 날은 그해 12월 1일이다. 압록강을 건너오는 중공군을 맞아 싸우던 동생이 실종된 것이다. 이듬해인 51년 형은 쓸쓸히 혼자 미국으로 돌아왔다.
 
빈센트 크렙스(볼티모어 카운티)·리처드 크렙스 형제의 이야기다.
 


전쟁에서 홀로 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동생(리처드)도 곧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덧없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중국과 미국 정부로부터 전해 들은 동생의 사망 소식에 산산이 부서졌다. 동생은 중공군에 포로로 끌려갔고 감옥에 갇혀 시름시름 앓다 51년 여름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후 그의 삶은 오로지 동생의 유해를 찾는데 모아졌다. 사방팔방으로 미친 듯이 쫓아다녔다. 90년대 말과 2000년 초 한국을 두 차례 방문하고, 이후 유해발굴단과 함께 북한까지 다녀왔다. 하지만 동생은 유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빈센트는 이후 한국전 실종 전사자 가족들의 중심에 섰다. 자신이 모은 자료만도 바인더 13권을 꽉 채웠다. 동생 리처드를 기리는 자서전 성격의 전쟁백서도 발간했다.
 
하지만 한평생 동생을 찾겠다는 일념에도 불구하고 병마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부인을 먼저 보내고 암으로 투병 중인 벤센트는 지난 24일 팍빌의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85세.
 
비록 살아생전 동생을 만나지 못했지만, 65년 만에 그렇게 애타게 찾던 동생 곁으로 자신이 다가선 것이다.
 
남은 몫은 살아남은 자들의 것이듯 빈센트의 유족들은 “언젠가 리처드의 유해를 찾는다면 형의 묘소 옆에 나란히 눕게 하겠다”고 말했다.물론 동생의 묏자리도 죽음을 앞둔 형이 4개월 전 마련해 놓은 자리다.
   
  
 
 


허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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