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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그린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영화"

북미 흥행 돌풍…'밀정' 김지운 감독

영화 '밀정(영문제목 The Age of Shadows)'의 흥행 기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23일 북미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개봉한 '밀정'은 개봉 첫 주말 사흘 동안 16만6000여 달러를 벌어들이며 전체 박스오피스 순위 31위에 올랐다. 스크린당 매출 순위로 치면 20위까지 뛰어올랐다. 외국어 영화에 유독 인색한 북미 시장에서 올린 흥행 수입으로는 이례적일 만큼 좋은 성적이다. 평론가들 또한 호평 일색이다. LA타임스,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의 주요 일간지가 일제히 '밀정'의 빼어난 만듦새를 찬양하는 리뷰 기사를 내놓으며, 김지운 감독의 연출력을 한껏 추켜 세웠다. 최근 LA를 찾은 김지운 감독을 만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이경민 기자 lee.rachel@koreadaily.com

- '밀정', 어떤 영화인가.

"일제 강점기를 그린 다른 한국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감정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게 그 시대 독립군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스파이 극의 전개에 맞춰, 친일과 항일 사이를 왔다갔다 했던 한 인물 내면의 어두운 행로가 재미있게 전개된 영화이기도 하다. 더불어 엄청난 연기의 향연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 한국에서도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순항 중이지만, 해외 시장에서도 관객 반응이 아주 좋다.

"외국 관객들은 한국 관객들에 비해 영화의 개별적 요소들을 눈여겨 봐주는 듯하다. 숲도 보고, 나무도 보는 느낌이랄까. 한국의 평은 이야기나 담론의 보편성에 집중돼 있다면, 외국에선 특별한 장면이나 촬영, 미술, 음악 등 특정 영화적 요소를 즐기고 열광하는 분위기가 있다. 감독으로서 두루 신경 쓰며 만든 요소들이 잘 전달된 듯해 기분이 좋다."

- '밀정'은 내년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문 한국 출품작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예상보다 훨씬 좋은 리뷰가 나오다 보니 사람들의 기대가 커진 듯하다. 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바란 적도 없고, 그저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었을 뿐인데 갑자기 국가대표 감독 같은 입장이 돼 애초에 없던 부담감이 생겼다."

- 주인공 이정출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의 연기가 기가 막힌 데.

"송강호 연기의 '총결산'이란 평가가 있을 정도다. 계속해서 기존의 자신을 깨 나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밀정'은 일제시대를 다룬 한국 영화 중에 유일하게 회색주의자 혹은 경계인의 초상을 표현한 작품인데, 쉽지 않은 역할의 어려운 지점들을 아주 훌륭히 연기해줬다."

- 김우진 역의 공유도 새로운 발견이다.

"송강호와 극명한 대조를 이룰만한 배우를 찾던 참이었다. 오랜 경험과 관록을 지닌 능구렁이 같은 이정출의 느낌과는 반대로, 젊고 지적이고 투명하며 신념이 강한 순수한 느낌을 가진 배우가 김우진 역을 맡아주길 원했다. 여리고 결핍된 부분이 있지만, 자신이 해야할 일을 위해 가진 능력을 끌어올리는 듯한 느낌도 필요했다. 그런 부분을 공유가 신선하게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감독들은 의외의 캐스팅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대한 쾌감이 있는데, 공유가 이 역할을 통해 연기자로서 새롭게 발견될 수 있다면 그 역시 의미 있는 일이겠단 생각도 했다. 마치 '장화 홍련'에서 염정아가 그런 평가를 받았던 것처럼."

- 반면 한지민이 연기한 연계순 캐릭터가 다소 평면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여성 캐릭터 묘사에 약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듣곤 하는데.

"'밀정'은 결국 이정출-김우진의 이야기, 더 깊숙이 들어가서는 이정출이란 한 인물의 이야기다. 그 밖에도 다양한 인물 군상이 나오긴 하지만, 합당한 시간 안에 이 모든 이들을 그리려다보니 각 인물의 에피소드를 덜어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일부 인물이 평면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여성 캐릭터가 약했다기 보단, 다른 단원들의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부족했다. 원래는 신성록이 연기한 조회령 캐릭터에도 엄청난 뒷이야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계순의 역할은 영화 안에서 충분한 감정적 추동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또 경성역에서 한지민이 보여준 액션은,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인파 속에서 익명으로 묻혀 있다가 확 퍼져나가며 고립이 돼 버리는, 무척 외롭고 슬프고 처연한 액션을 맵시 있게 보여줬다."

- 색감이나 음악도 비슷한 시대를 다룬 영화들에선 찾아보기 힘든 독특함이 있다.

"일제 강점기 시대를 다룬 영화들이 틀에 박힌 듯 사용하는 룩과 음악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스스로 '콜드 느와르'라고 이름 붙였을 만큼, 한국-일본, 항일파-친일파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시대에 벌어지는 냉혹한 관계와 스파이의 세계를 그리려 했다. 그러다보니 이 시대를 표현할 때 흔히 쓰이는 브라운, 마젠타 풍의 컬러 대신 블랙과 블루 등의 차가운 색을 썼고, 새벽 장면도 많이 넣었다. 배우들의 입김도 그대로 썼다. 아주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긴장감을 주는 드라마를 만들려다 보니, 음악도 드라마를 강화시키는 고전적 터치의 음악 대신 계속해서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기계음, 전파음, 화이트 노이즈 등을 많이 집어넣었다."

- 열차 시퀀스는 두말할 나위 없는 영화의 하일라이트다. 원래는 두 배 가까이 긴 분량이었다던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때 열차 장면을 찍어 본 경험이 있어 조금은 익숙했다. 은유적으로는 격동의 시대에 맹렬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표현하고 싶었다. 다 합치니 40분 가까이 되더라. 그런데 이걸 다 붙여 놓아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너무 길어서 어쩔 수 없이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냈는데, 찍으면서도 정말 재미있었던 부분이다. 차기작 준비로 확장판 개봉은 힘들겠지만, DVD나 블루레이를 출시할 때 엄청난 '삭제신 퍼레이드'를 넣을 생각이다.

- 2013년 '라스트 스탠드'로 할리우드에도 진출했는데.

"딱히 큰 야심을 갖고 할리우드에 온 건 아니었다. '악마를 보았다'를 찍으며 너무 심적으로 지쳐 있던 터라, 그걸 빨리 탈피하고 싶었다. '라스트 스탠드'도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캐스팅되면서 애초에 구상했던 무겁고 비장한 색채를 벗어나 재밌고 가벼운 영화로 만들었다. 미국에선 2차 판권 시장에서 꽤 선전하는 등, 흥행에 실패한 영화로 평가받진 않는데, 한국에선 쫄딱 망한 영화처럼 돼 버렸더라. 여러가지로 나름 의미가 있는 작품인데, 내가 생각한 것만큼 세심한 평가나 진단을 해주진 않더라. 어찌 됐건 나는 괜찮은데, 외부에서 보기엔 내가 꽤 부담을 느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그때의 경험이 '밀정'에 도움이 된 부분이 있나.

"배우나 스태프들이 내가 아주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변했다고들 하더라. 할리우드에서 늘 시간의 압박에 시달리며 찍어야 했던 경험이 내 태도를 변하게 한 것 같다. 이전까지는 늘 '어떻게 찍을까'를 먼저 고민하며 내 영화적 스타일을 과시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젠 '지금 무엇을 찍어야 하나' '이 장면엔 무엇이 필요한가'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필요한 것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게 되고, 배우와 스태프들도 더 집중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더 빠르고 좋은 작업물을 내놓게 된 것 같다."


이경민 기자 lee.rache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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