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오픈업] 체온계로 잴 수 없는 '마음의 병'

수잔 정/소아정신과 전문의

미국에 오기 전 섭씨 40도가 넘는 고열로 입원했던 백인 청년을 치료한 적이 있다. 평화봉사단 단원이었던 그는 말라리아와 장티푸스를 동시에 앓고 있었다. 진단 후 그는 치료를 받았고 건강하게 퇴원했다.

'고열'이라는 증상은 환자를 괴롭히기는 하지만 생명을 건지게 하는 신호등이다. 체온계로 잴 수 있는 열은 이렇게 의사들의 치료 방향을 인도해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이처럼 똑 떨어지게 숫자로 표시되는 증상에 비해 마음의 증상은 매우 애매하다. 예를 들어서 우울한 기분을 생각해 보자. 10~13세 소녀들은 어느날 이유도 없이 울적하거나 짜증을 내며 몸이 아프다고 한다. 그러면서 초경을 경험한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비가 오거나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에 외로움과 슬픔에 휩싸여 죽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느낌이나 증상을 잴 수 있는 체온계 같은 도구는 없다.

최근에 유명대학 교수의 수필에서 방황하는 한 대학생의 이야기를 읽었다. 무척 불안해보이는 한 학생이 이 교수의 연구실 밖에 서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교수는 학생을 불러 찾아 온 이유를 물었다. 청년은 오랜 시간 자신이 강박증세로 고생했고 불안하며 세상이 깜깜하다고 하소연했다. 학생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이 교수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해 그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었다. 동아리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을 사귀거나 새로운 취미를 찾아 심경의 변화를 유도해 보거나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등등. 얼마 후 교수는 그 대학생이 자신의 강의에 들어와 청강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대화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그런 어느날 교수는 그 학생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수필을 읽으면서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교수의 마음은 느껴졌지만 전문가인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불안하고 오랫동안 강박증에 시달리면서 세상이 암흑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에게 왜 교수는 상담가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보라고 권유하지 않았는지…. 자신은 교수이지만 심리학이나 정신과 전문가가 아니다. 동아리 활동이나 취미, 운동 등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면 젊은이의 자살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불안 증상이나 강박 관념은 수치로 재기가 어렵다. 세상이 암울하다고 느끼는 우울한 감정을 체온계의 수치처럼 '40도'라고 진단할 수는 없다. 전문의가 그 학생을 보았다면 먼저 병력을 물었을 것이다. 만일 과거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면 반복해 나타나는 불안이나 우울증이므로 증세의 심각함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집안에 알코올이나 도박 중독자, 자살기도자 등이 있었다면 우울증이나 조울증까지도 의심이 가능해 자살에 대한 예비책을 강구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잠시 휴학하면서 치료를 받거나 환경을 변화시키는 등의 조치도 취했을 것이다.

고열 환자에게 정신과 의사는 해열제를 복용하고 시원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라고 충고한다. 그래도 열이 내리지 않으면 해당 분야 내과 의사에게 가보라고 한다. 마찬가지 이치다. 누군가 우울하고 불안해 하면 친구를 사귀고 취미를 만들며 운동을 하라고 권한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이 암담하다면 반드시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아가라고 권해야 한다.

원인 모를 신체의 고열이 몸 안에 잠복한 결핵 때문일 수 있듯이, 낫지 않는 마음의 병은 죽음으로 가는 통로일 수도 있다. 숫자로 잴 수 없는 마음의 병도 병이다. 주위의 조언과 격려도 중요하지만 병이 분명한 만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마음병의 끝은 자살일 수도 있어 전문가의 도움은 더욱 절실하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