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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대통령께 죄송한 나라

김종훈 / 야간제작팀장

2013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동행했던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이 인턴 직원 성추행 혐의로 워싱턴DC 경찰에 고발됐다.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은 긴급 사과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 때문에 "윤창중이 대통령을 성추행 했나? 왜 대통령께 사과하냐"는 비난이 일었다. 홍보수석이 대통령을 대신해 국민에게 사과해야지 왜 거꾸로 대통령에게 사과를 하는 지 모르겠다는 지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정부와 정계 인사들로부터 사과를 많이 받아왔다.

2014년 10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개헌 논의 발언과 관련 "대통령께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개헌에 부정적 입장인데 그와 상반된 입장을 보인 것처럼 알려져 죄송하다는 뜻이었다.

2015년 6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 "우리 박근혜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박 대통령이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뒤였다. 그는 또 "대통령께서도 저희들에게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그는 청와대가 임명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국회의장이 의회주의를 파괴했다"고 성토하고 있다. 이 대표는 과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야당 의원들이 단식을 한 것과 관련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 사회에서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집단이 국회의원이다. G20 국가 중에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법을 안 지키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선거제도가 정착된 나라들 중에서 단식투쟁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나라도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여기에서부터 국회의원의 특권이 시작되고 있다."

단식투쟁이 특권이며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여당 대표가 선거제도가 정착된 나라에서 왜 단식투쟁을 시작했을까?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 국회에서 해임 결의를 당해 너무 죄송하고, 또 무려 774억원을 재계를 통해 순식간에 모금한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청와대 개입설이 나돌고 있어 이 또한 너무 죄송한 것 아닐까? 새누리당은 이들 재단과 관련한 국정 조사에서 증인 채택을 거부하며 "죽어도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의혹이 더 커지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미르.K스포츠재단이 단기간에 돈을 끌어 모은 것과 관련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도 900억원 모금이 금방 이뤄졌다"고 말해 어이없는 비유라는 비난을 받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금도 참사의 진상을 밝혀달라며 싸우고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진상 조사를 가로막는 여당의 대표가 한류.스포츠 홍보를 위한 재단의 모금과 3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의 모금을 비교한 것이다.

미르재단의 공식 활동으로 처음 알려진 것은 한국 전통문화 홍보를 위해 운영되는 서울 중구의 '한국의 집'에 한식.프랑스식 융합 요리학교 '페랑디-미르' 설립을 협의하는 것이었다. 미르재단은 한국문화재재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프랑스의 요리학교 '에꼴 페랑디'와 합작해 요리학교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탈출할 수 있었던 학생들을 생매장시킨 세월호 사건과 비교할 사안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대통령께 죄송한 여당 대표는 '총대'를 매고 단식에 나섰다. 이른바 대통령의 '심기 경호'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그리고 돈을 댔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들 재단의 해산을 결정했다. 세월호 사건 만큼 중요해서 '뚝딱' 거금을 끌어 모았던 재단은 더 이상 의혹이 파헤쳐지기 전에 '뚝딱' 없어진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보스'에게 죄송해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속이 답답하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고국의 정치를 바라보는 한인들의 마음도 답답하다. 떠나왔다고 해도 애정이 없지 않기에 '대통령께 죄송한 나라'는 정말 그만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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