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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들이 가르치지 않는 것

조선 도공들의 역할
도자기 기술, 일본 경제성장의 원동력 제공
자화자찬에만 급급한 일본

1543년 포르투갈 선박이 태풍에 떠밀려 간신히 일본 규슈섬 남쪽 다네가시마에 표착한다. 배에 탔던 포르투갈 선원들은 현지 일본인들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그들은 고마움의 표현으로 조총 2자루를 선물로 건네준다.

이 조총은 훗날 임진왜란 때 선보인 신무기의 주축이 된다. 당시 일본은 조선 .오키나와와는 외교,무역의 파트너로 청나라와 네덜란드는 무역 파트너로 상대하던 시절이다. 포르투갈은 일본에기독교 문명 전파에 너무 열을 올린 나머지 일본에서는 1639년 그들에 대한 입국 조치를 취한다. 그러는 사이 1609년부터 네덜란드는 마찰없이 교류를 확대시켜 나간다.

이렇게 일본이 동남아,동북아,중동,유럽 등을 망라해 상품시장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던 시절, 도자기는 원래 중국 제품이 유명해 '차이나'란 말도 생겨났다. 당시 중국은 도자기는 물론 차, 비단 등 3가지 품목을 가지고 막강한 위세를 떨치며 세계의 모든 은을 끌어모으고 있던 시절이다.

임진왜란(1592-1598년) 당시 일본군에 의한 대대적인 조선인 납치가 이뤄졌다. 피랍자들의 상당수는 도공이었다. 백파선 그리고 그의 남편 김태도 등은 사가현 다케오시에 정착해 도자기 생산에 전념했다. 나중에 이삼평이 자리잡은 아리타 지역으로 906명의 도자기 기술자들을 이주시킨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대륙을 석권한 14년 뒤인 1658년부터 일본은 아시아는 물론 중동, 유럽을 상대해 도자기 수출국으로서의 입지를 강화시켜 가면서 결국에는 중국 도자기 산업을 위축되게 만든다. 17세기 이래 경제적 성장을 밑바탕으로 에도 시대의 번영을 거쳐 19세기에 일본 대도약의 밑거름을 만들게 된다.

일본 교과서는 임진왜란 시 조선 도공들이 일본 경제에 미친 혁신적인 영향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그저 조선 도자기 덕분에 일본 다도 애호가들이 더 좋은 그릇에 차를 마시게 됨으로써 다도 문화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정도다.

조선 도공의 힘에 의한 일본 도자기 기술의 발전은 해외시장에서 일본 상품의 지위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고 17, 18세기의 경제 성장의 기반이 된 것. 그러나 이런 사실이 일본 역사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조선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보다는 도쿠카와 막부의 육로 및 해로 정비가 일본 상업 발달을 촉진했다는 자화자찬만 늘어놓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점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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