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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광인 일기'

김완신 편집국 부국장

버지니아텍 총격사건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더욱이 범인이 한인대학생 조승희씨로 밝혀지면서 한인사회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격사건이라는 통계적 사실에 경악하는 한편 동족으로서 심정적인 고통까지 겪어야 했다.

이번 사건은 러시아 작가 고골의 작품 '광인 일기(狂人日記)'를 떠올리게 한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사실주의의 토대를 세운 고골의 '광인 일기'는 한 미치광이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주인공이 깊은 좌절에 빠지게 되고 이를 과대망상으로 보상받으려 하다가 결국 미치게 된다는 내용이다. 작품의 화자인 하급관리는 상사의 딸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 딸과 상류층 남자와의 혼담이 시작되자 관리는 광기에 휩싸이고 결국은 공상 속에서 자신을 스페인 국왕으로 만들어 이를 통해 현실의 좌절과 굴욕감을 벗어나려고 한다.



고골이 살았던 19세기는 사상적 변화기였던 제정 러시아 말기로 개인과 사회의 괴리감이 컸던 시대였다. 격동의 시절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출생한 고골도 부와 배경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시대적 모순을 절감하며 살았다. 시집을 발표했지만 외면 당하자 모두 수거해 불태워 버렸고 말년에는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부적응을 견디지 못해 반미치광이 상태에서 자살했다.

지난주 조승희씨는 NBC방송에 보낸 동영상 패키지를 통해 "나는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고 내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 당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모든 세대의 순진한 아이들을 이끈다"고 언급했다. 자신을 약한 자를 구원하는 선지자로 주장하는 과대망상의 일면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산 채로 불에 타 죽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 모욕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기분을 알아"라는 말로 자신의 죽음을 종교적 차원으로 미화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스페인 국왕으로 생각했던 고골 소설의 주인공과 자신을 예수로 여겼던 조씨의 망상은 괘를 같이하고 있다.

개인과 사회는 항상 대립하기 마련이다. 개개인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이상향의 사회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다만 제도와 규율로 제어되는 몰인정한 조직만이 있을 뿐이다.

사상의 풍랑위에 서 있었던 고골의 시대나 빈부격차와 부조리를 겪는 현대사회 모두가 2세기의 시간 차이와 공간적 간격에도 불구하고 개인과 사회가 여전히 대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감정과 사고가 각기 다른 개인이라는 객체가 모여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사회구조에서 또다른 광인의 출현을 배제할 수는 없다.

망상은 그릇된 믿음이지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를 갖고 있다. 여기에 '편견'과 '일탈'이 '정의'로 잘못 포장될 때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이 만들어진다. 사회와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약한 정신이 사건을 만들지만 그 결과의 참혹성은 지독히도 강렬하다.

정신질환자의 범죄라고 해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번 참극은 용서와 이해를 거론하기에는 그 충격과 슬픔이 너무 크다.

그러나 광인을 만들어내는 사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회 공동체'라는 한배를 탄 운명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들리는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의 외침에 마음을 열어야겠다.

버지니아텍 추도식 현장에서 침묵의 하늘로 올려진 풍선에 더 이상의 '광인 일기'가 쓰여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실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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