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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자연은 무심하다

안유회 / 논설위원

홍수가 지나가면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는다. 어린아이와 어른을 가리지도 않고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리지도 않는다. '이 사람은 평소 착했지'라며 피해가거나 '저 사람은 나쁜 일을 했지'라며 더 세차게 물길을 몰아가지도 않는다. 때론 한 마을과 도시를 단번에 삼킨다. 선악이나 귀천같은 건 안중에 없다. '화마가 삼켰다'같은 표현은 사람의 언어이지 자연의 언어는 아니다. 그저 바람은 불고 물은 흐르고 불은 탈 뿐이다.

이런 자연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 중의 하나가 아마도 "하늘도 무심하지"일 것이다. 그렇다. 하늘도 무심하고 땅도 무심하다. 바람도 비도 불도 무심하다.

허리케인 매튜가 아이티와 쿠바를 거쳐 플로리다를 '무심하게' 지나갔다. 아이티에서만 800명이 넘게 죽었고 플로리다 등 동남부 상륙을 앞두고 300만여 명이 대피길에 나섰다.

비는 오고 바람은 부는 법이지만 이번에도 기후변화 우려가 봇물을 이뤘다. 매튜는 아이티 등에서 힘을 쏟아부었음에도 지치지 않은 완력으로 플로리다 등을 강타했다. 게다가 대서양으로 사라지지 않고 U턴을 해 같은 지역을 연타할 것이라는 예보까지 나왔다.



한국에서는 지진이 쓸고 간 울산과 부산 등에 때 아닌 가을 태풍 차바가 몰아쳤다. 한국인에게 최근의 지진과 차바는 지금까지 직면하지 못했던 이물감 가득한 공포였다.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는 이제 너무 자주 등장해 원래의 경각심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최근 정부 당국자와 과학자들의 발언에는 어떤 화급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의 일상화가 시작됐다' '지구가 11만5000년 래 가장 높은 기온을 향해 가고 있다' '기후변화 해결에 앞으로 100년 동안 104조~570조 달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튜를 놓고서도 워싱턴포스트는 "허리케인의 위력이 갈수록 강해지는 것은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수증기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기후변화를 지목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매튜를 앞으로 훨씬 잦아질 이상기후 현상의 증표라는 데 동의한다. 사실 최근 한국의 기록적인 장기간 폭염과 가주의 가뭄과 산불도 모두 기후변화의 일상화로 지목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매튜 진입을 앞두고 경고음이 울리던 지난 5일 파리기후변화협정에 72개국이 비준함으로써 다음달에 발효된다는 발표가 나왔다. 협정이 발표되면 전세계는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섭씨 2도 안에서 묶는다는 목표를 위한 공동 보조에 나서게 된다. 1992년 시작된 지구적 차원의 온난화 방지 대책이 24년 만에 시행되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미국과 유럽이 책임을 후발 공업국에 떠넘긴다고 반발하던 중국과 인도도 동참했다.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은 미국도 동의했다. 탄소배출권 거래를 둘러싼 음모론도 잦아들었다. 그만큼 기후변화는 더 미룰 수 없는 사안이 됐다.

가이아 이론은 기후변화를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이다. 그리스 신화 속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에서 이름을 따온 이 이론은 지구를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하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본다. 지구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변할 수 있다. 기후변화는 지구가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자정작용이다. 이론대로 하면 인간의 지나친 번성이 지구의 건강을 해치면 지구는 대응에 나선다. 필요에 따라 인류문명을 지울 수도 있다. 자연은 무심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파리기후변화협정 성사가 발표된 날을 "지구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날"이라고 밝혔다. 다른 말로는 자연의 무심함을 무서워하는 법을 배운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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