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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휴(休)하고 휴 하자

박재욱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법사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가끔은 쉼표도 찍어가며 살아보라는, 시인의 깊은 성찰이 담긴 '그 꽃'(고은, 1933- )이란 시의 전문이다.

때로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두루 챙기며 살 법도한데, 연명과 도태, 낙오의 강박을 감내하며 사는 이들에게는 언감생심 턱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멈추면 비로소 멈출 것을, 심신의 피폐를 담보로 억지를 세워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버티며, 그 관성과 자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옛 선비와 스님들은 솔바람, 물소리도 쉬어갈 고즈넉한 곳에 조촐한 정자나 토굴을 지어 놓고, 무시로 드나들거나 낙향해 살았다. 모자라도 남아도 그런대로,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의 '있는 그대로'를 느긋이 누리며 유유자적했다.

그들은 휴휴정, 휴휴당, 휴휴산방 등의 당호를 새긴 편액을, 그 거처에 걸어 한결 운치를 더했다.

휴(休)의 일반적 의미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지친 심신을 온전히 쉬어 삶의 활성화를 꽤하라는 것이다.

음악에서도 쉼표는 음표만큼이나 중요하다. 12세기까지 쉼표란 없었고, 작곡가들은 소리를 내지 말라는 지시를 할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쉼표 없는 악곡, 그것은 벅차고 여운 없는 불완전한 음악일 수밖에 없다.

한편 선(禪)적 '휴'는 번뇌 망상으로 원숭이 패싸움하듯 미쳐 날뛰는 마음을 내려놓고 '쉬고 쉬라'거나, 쉼도 쉰다. 즉 '쉰다는 생각마저도 쉬라'는 의미이다.

'휴'의 반복은, 이왕 쉬려면 '온전히' '야무지게' 쉬라는 함의와 의미강조의 운율적 표현이라 하겠다.

'휴휴'는 절집에서 유래했다. 13세기께 중국의 몽산덕이 선사는 휴휴암의 암주로 이런 선어를 남겼다.

쉬고 또 쉬어, '탐. 진. 치 가득한 욕계에 살고 있지만 그 욕계에서 벗어나고, 몸은 비록 번뇌 가득한 사바에 살지만, 마음은 연꽃처럼 번뇌에서 벗어나라'

그 후, 한반도 부산의 범어사를 필두로 전국의 몇몇 사찰에서도 휴휴정사를 건립하여 선방으로, 일반인에게는 지친 몸과 마음의 치유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몇 백억 광년이란 광활한 우주 속, 한 티끌보다 작은 지구촌에서, 도대체 알면 얼마를 알 것이며, 오르면 어디까지를, 쥐면 얼마를, 살면 얼마를 살 것인가.

느긋하다는 것이 게으름을 뜻하거나, 쉰다는 것이 결코 입신에 장애도, 낙오를 초래하는 것도 아니다.

'느긋한 쉼'은 일상의 활력소이며, 헐떡이며 오를 때 놓치게 될 세상사 이모저모를 엿보게 함으로써, 삶의 또 다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여 생명 찬 나날이 되게 하는 느림의 미학이며 여백의 미이다.

그와 달리, '쉬고 쉰다면 쇠로된 나무에도 꽃이 피'리니, 한 생각 쉬며 쉰다는 생각마저 쉰다면 뉘라서 알랴, 그리도 아득했든 그 지고지순한 깨달음을, 미투리의 들메끈이 터지듯 어느 날 몰록(문득) '지금 바로 여기'에서 채뜨리는 열락을 맛보게 될런가.

아무쪼록 방하착! '휴(休)하고 휴 하자'.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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