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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트럼프의 '라커룸 토크'

김 종 훈 / 야간제작팀장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라커룸 토크'가 선거판을 뒤흔들고 있다. 비록 오래전이라 하더라도 여성을 극도로 비하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진저리를 친다. 여기서 '라커룸 토크'란 남성들이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공개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자유롭게 하는 말을 뜻한다. 트럼프의 '라커룸 토크' 논란을 보며 다소 찔리는 남성들이 많을 것 같다. 자신들도 '라커룸 토크'를 해봤기 때문이다. 이 세상 성인 남자라면 대부분 트럼프의 발언과 비슷한 말을 해봤거나, 아니면 그런 말을 하는 남자들과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다. 남자들이여 솔직해지자.

32년 전 대학생 때였다. 한국에서 가깝게 지냈던 고등학교 친구와 미국에서 만났다. 여러 남자들이 한자리에 앉았는데 한 여학생이 아는 척을 하며 잠시 함께 있다가 떠났다. 그녀가 있는 동안 철저한 '매너남'이었던 남자들의 입이 거칠어졌다. 트럼프와 같은 '라커룸 토크'가 시작된 것이다. 차마 글로 쓸 수 없는, 남성들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그런 말들이 오갔다. 그때 무척 엉뚱했던 나는 "이 세상 여성들은 모두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사람들인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다. 순간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얼어버렸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후 30여 년 동안 수없이 많은 그런 남성들의 자리에 앉아 있었고, 더 이상 '어머니 타령'은 그만뒀다. '라커룸 토크'를 저지할 의지가 없어졌고 무심해졌다. 최근 한국 대학가 곳곳에서 불거진 여성비하.성희롱 카톡방 대화 내용들은 불행하게도 너무 흔한 남자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서로 비밀도 잘 지킨다. 마음에 드는 여성들 앞에서는 서로 앞다퉈 '매너남'이 되고 거칠었던 입을 함께 씻어 준다. 젊은 남성들의 그런 행태를 꾸짖을 어른도 없다. 자신들이 더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라커룸 토크'는 그렇게 이 세상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무심하게 벌어진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녹음된 대화 내용이 공개됐고, 그래서 당연히 몰매를 맞고 있다. 비록 공개되지 않았지만 여성을 비하해 온 이 세상 모든 남성들도, 그리고 다른 남성의 비하를 묵인해 온 이들도 함께 몰매를 맞고 반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가 공화당 예비선거 후보일 때 이런 문제가 불거졌다면 과연 그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지 못했을까? 그는 예비선거 기간 중 이미 이민자와 소수인종, 이슬람교도 등 수없이 많은 집단을 공개적으로 모욕했다. '라커룸 토크'가 아닌 공개 연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조롱하고 멸시했다. 그래도 그는 공화당 대선 후보로 뽑혔다. 그리고 그가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극도로 비하한 사실이 육성을 통해 공개되자 이제서야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고 한심하다. 그들이 등을 돌리기엔 너무 늦었고, 애초에 트럼프와 큰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동안 자신의 비하 발언에 항상 당당했던 트럼프가 이번엔 사과를 했다. 하지만 사과 또한 너무 늦었고 진정성도 없다. 그가 정말 사과를 하려면 지금까지 비하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요즘 미국이나 한국 정치를 보면 '착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슬프다. 세상에 착한 남자.여자들이 많은데 왜 하필 저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을까 느껴질 때가 많다. 착한 정치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능력이 좀 떨어진다 해도 여성을 비하하지 않고, 소수계를 짓밟지 않고, 돈에 미쳐 부패하지 않고, 존경할 수 있는 인품을 가진 그런 정치인이라면 기꺼이, 열렬히 응원하겠지만 그런 감동을 느낄 정치인은 찾아 보기 힘들다. 사람을 노리개로 삼는 폭언 대신 사람을 사랑하는 정치인들의 따뜻한 '라커룸 토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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