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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부부의 날'

김완신 편집국 부국장

1년이 365일이나 되다보니 특별하게 이름 지어진 날들이 많다. 이는 미국보다 한국이 더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과 같이 널리 알려진 날들도 있지만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처럼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일부 계층에만 통용되는 '족보'없는 날들도 많다.

한국에는 '부부의 날'이 있다고 한다. 비공식으로 만들어진 날이 아니라 엄연한 법정 기념일이다. 2003년 민간단체인 '부부의 날 위원회'가 제출한 청원이 국회본회를 통과해 올해부터 법정 기념일로 인정받게 됐다.

부부의 날은 5월21일로 정해졌지만 이날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최근에 한 단체가 직장인 1500여명을 대상으로 '부부의 날'을 알고 있는지 조사했는데 10명중 8명이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부부의 날'을 제정한 취지가 화목한 가정과 부부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우자는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부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설적이지만 얼마나 부부 관계에 문제가 있으면 '부부의 날'이라는 어색한 날까지 만들어 기념하게 됐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치 나무를 평소에 심지 않아 나무를 심자는 식목일을 만들고 청소를 안하기 때문에 대청소의 날을 정해 청소를 하자는 것과 비슷한 발상처럼 느껴진다.

부부는 가정의 축이다. 이 축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가정이 온전하지 못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족간의 화목을 강조하지만 결국 건강한 가정의 기본은 바른 부부 관계에서 출발한다.

이혼이 결혼만큼이나 많은 시대다. 시카고 도로변에는 '인생은 짧다. 이혼하라(Life's short. Get a divorce)'는 법률회사의 광고판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결혼과 가정의 가치가 무너져가는 것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세상이 됐다.

모든 사랑중에서 가족간의 사랑만큼 오래가고 강렬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떠받치는 것은 '인내'다. 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도 결국은 인내라는 미덕에 의존해야 빛을 낼 수가 있다.

얼마전 60여년을 해로한 노부부의 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이들 부부는 살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인내'라고 답했다. 사랑으로 평생을 함께 살았지만 그 사랑을 지탱해준 것은 인내라는 것이다.

채근담에서는 부부의 허물을 큰 소리가 아니라 은은하게 경계하고 오늘 해결하지 못하면 내일 다시 노력하라고 했다. 따뜻한 기운이 얼음을 녹이듯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지침이다.

올해에는 유난히 한인사회에서 부부 갈등으로 인한 끔찍한 사건들이 많았다. 상대의 허물을 탓하고 그 허물을 인내하지 못해 생긴 사건들이었다.

사랑의 대한 명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다. 그중에서도 논어에 나온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살기를 바란다는 뜻이다'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사랑하는 대상이 살기를 바란다는 의미는 보호하고 배려한다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그 대상에 대한 총체적인 희생이다. 인내의 미덕과 상대가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면 이 세상에 부부 갈등은 없을 것이다.

'부부의 날' 제정의 취지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왠지 옹색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부부'는 사랑과 인내로 만들어 가는 관계이지 결코 법으로 제정해 기념해야 하는 대상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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