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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감사는 가장 큰 선을 이루는 길

[LA중앙일보] 발행 2016/10/18 미주판 28면 기사입력 2016/10/17 20:25

김정국 골롬바노 신부/ 성 크리스토퍼 성당

미사(Mass)의 유래를 보면, 초대 교회 때부터 "감사제(Eucharist)"라고 불러온 감사의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미사를 봉헌하면서 2000년 동안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온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에 빵을 떼어 나누시고 포도주가 담긴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신 것을 재현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이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일이 온 세상을 바꾸어 놓을 힘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셨다.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어느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멀리서 다가가지 못한 채 목소리를 높여 치유해 달라고 청하는 나병 환자 열 사람과 마주치게 된 일을 전한다. 예수님은 쉽게 그들의 청을 들어주셔서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이 모두 사제에게 가는 도중에 실제로 나병이 나았다고 한다. 유다 사회는 사제가 나병에서 치유된 사람을 증명해 주어야만 부정을 벗고 종교 예식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제의 확인을 받도록 보낸 것은 치유를 확언한 것이었다. 이렇게 그들에게 삶을 통째로 바꾸어 놓는 엄청난 치유가 일어났던 것이다.

옛날 영화 "벤허"에 나오는 장면 중에, 나병에 걸린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사회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동굴에서 불행하고 고통스런 삶을 사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니 그와 같은 생활을 하던 이들을 가족과 재회하고 정상적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있게 하는 나병의 치유는 엄청난 천형으로부터의 해방이요 다시 행복한 삶을 되찾은 놀라운 기적이다. 그런데 복음서는 예수님께 치유받은 사람들 열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께 돌아와 그분 발 앞에 엎드려 병이 나은 것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고 전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하고 질문을 던지신다.

예수님은 당신이 베푸셨던 기적적 치유를 받은 나머지 아홉 명이 감사할 줄도 몰라서 괘씸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베푸신 치유가 제 결과를 다 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셨던 것 같다. 육신적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온 사마리아 사람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엄청난 말씀을 하셨다. 열 명 중 홀로 이 한 사람만이 예수님의 입에서 이 가장 중요한 말씀을 듣는다. 다른 아홉은 예수님을 이용해서 그들이 그저 육신적 치유를 받은 일과 자신이 잠시 불운에서 극적으로 빠져나온 것에 만족할 뿐, 이를 통해 참으로 최고선이자 최종 목적인 구원에까지 이끌고자 하신 뜻은 받들 자격이 없었다.

받은 사랑을 인정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일은 인간적으로 보아도 참 훌륭한 일이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축복이 따른다는 것은 꼭 그리스도교 신앙인이 아니어도 다 아는 사실이다. 감사하면 또 감사할 일이 생겨난다 말도 참 지혜를 담은 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더 나아가 감사는 우리를 구원할 힘이 있는 결정적 자세라는 것을 오늘 다시 되새겨 보게 된다.

bano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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