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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프리즘] 폴웰 목사 사망과 대권 방향

[LA중앙일보] 발행 2007/05/22 미주판 17면 기사입력 2007/05/21 18:41

김동석 뉴욕뉴저지자유권자단체 대표

1925년 여름 테네시주 데이턴고등학교에서 생물교사가 다윈의 진화론을 가르치다 기소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남부 11개주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었다.

연방하원과 국무장관을 역임했으며 대선후보로도 나왔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원고측 변호사로 무신론 범죄 변호사인 클레어런스 대로가 피고측 변호사로 섰다. 재판은 전국으로 중계되어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고 후에 '바람의 상속'이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결국 원고가 이겼지만 이를 지켜본 많은 지식인과 언론은 기독교 근본주의 운동을 불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대중사회에서는 퇴각했지만 자신들만의 공동체 구축에서 응집력을 발휘했다. 교회와 사회의 틈을 메우기 위해서 병원 학교 라디오. TV 방송국 등 각종 비영리 기관들을 설립했다. 이렇게 유연한 선교활동을 통해서 어느새 남부지역을 정치적으로 장악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지한 카터 대통령이 종교의 정치세력화를 거부하는 것에 반발해 1980년 공화당의 레이건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레이건은 8년 동안 재임하면서 기독교 보수세력의 요구를 충실히 따랐고 보수주의 정치인의 모델이 되었다. 이 집단을 '바이블 벨트(Bible Belt)' 즉 복음주의 교단이라 부른다. 바이블 벨트의 중심에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제리 폴웰 목사가 있다.

지난 30년간 미국 보수 기독교계의 정치참여를 주도해 온 제리 폴웰 목사가 지난 15일 심장마비로 숨졌다. 라디오 방송설교를 통해서 인기를 끌면서 1956년 맥주공장터에 교회를 개척했다. 그가 개척한 토마스로드교회는 현재 출석신도 3만명을 자랑하는 초대형교회로 성장했다. 제리 폴웰 목사는 히피문화와 동성애.낙태를 허용하는 대법원의 판결을 비난했다.

노인과 장애인들에 대한 의료혜택인 메디케이드와 각종 사회복지 프로그램 일하는 여성을 위한 지원안을 반대했다. 특히 안정된 백인사회의 가치를 위협한다며 이민자 유입을 거부했다. 흑인민권운동에 반대해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전면에서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1960년 민주당이 가톨릭 교도인 존 케네디를 대통령후보에 지명하자 공화당 후보인 닉슨쪽에 줄을 대고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시도했다. 이때부터 폴웰 목사는 공화당 극보수주의 정치인들과의 교분을 두텁게 하면서 정치운동에 뛰어 들었고 폴 웨이리치와 함께 우파 정치조직인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를 창설했다.

제리 폴웰 목사는 선거 때마다 '성경을 든 사람은 이렇게 투표하라'는 설교를 해왔다. 대통령 선거전에선 기독교인들의 몰표를 행사하면서 미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2000년 대선 당시 공화당 유력주자였던 존 맥케인 상원의원이 폴웰 목사를 비난했다가 낙마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의 위크엔드 리뷰섹션에선 제리 폴웰 목사의 사망이 2008년 대선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바이블 벨트를 챙기면 승산이 있다고 여겨온 공화당인들에게 폴웰 목사의 사망 소식은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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