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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엽이 시카고 한인사회에 주고 간 숙제

김인규의 주위를 둘러보니

최근 스코키 퍼포밍 센터에서 열린 정엽 콘서트는 여러 가지 의미를 안겨 주었다. 가을 분위기에 특히 어울리는 그의 노래는 일상에서 다소 건조해진 우리의 마음을 다시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나는 이 콘서트를 수술로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집사람 대신 지인 한 사람과 함께 갔다. 당초 그는 저녁 정기 모임이 있는데다 이 같은 공연은 관심이 별로라며 거절했다. 그러나 혼자 가기가 뭣해 설득 결과, 동행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된 얼마 뒤부터 그는 사전에 받았던 형광봉을 리듬에 맞춰 흔들며 노래에 심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내내 심드렁한 태도를 보일 것이란 우려와는 달리 공연을 진정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는 아주 오래전 감명깊게 보았던 ‘이유있는 설복’(Friendly Persuasion)이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명우 게리 쿠퍼와 도로시 맥과이어가 퀘이커교 부부로 출연한 이 영화의 줄거리보다 맥과이어의 극중 한 행동이 연상된 것이다. 미국 남북 전쟁이 끝난 뒤 주인공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축제가 벌어졌다. 한창 음악이 흐르자 여자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게 선율에 맞춰 발장단을 맞추는 장면이 나온다. 퀘이커 교도들은 예배를 침묵으로 진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평소 가무를 하거나 여기에 반응하는 것조차 죄악시할 정도로 금욕주의자들이다. 영화 속 여주인공은 퀘이커 교도로서 음악에 몰두해서는 안 된다는 이성의 제지에도 자신도 모르게 이 같은 몸짓을 보인 것이다.



정엽 공연에 따라나선 지인은 물론 퀘이커 교도나 금욕주의자는 아니다. 단지 공연 관람에 익숙지 않았고 흥미도 별반 없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유있는 설복’의 여주인공처럼 자신도 모르게 음악에 빨려들어간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오기 잘했다”고 의외로 만족해 하는 모습에 나 역시 흐뭇했다.

음악이란 이처럼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를 멀리하려는 사람들조차 무장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 셈이다. 정엽 공연에서는 또 하나 의외의 현상을 발견했다.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연령층에 관계없이 청중 대부분이 형광봉을 흔들며 스스로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 시카고 한인들은 타지역에 비해 보수적 경향이 강하다고 여겨왔다. 아니, 더욱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대부분의 사안에 방관자적 자세를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날 보여준 관중석의 반응은 적극적이었을 뿐 아니라 열정적이기까지 했다. 타지역 한인들의 관람 열기와 비슷했다. 특히 1.5세 2세들의 호응은 예상을 뛰어 넘었다. 정엽이 “시카고에 다시 오고 싶다”고 한 말은 단순히 관객들이 듣기 좋아하라고 또는 호응을 유도하기 위한 입에 발린 멘트가 아니었으리라 판단한다.

음악은 이처럼 인간의 감정을 진동시키고 순화하는 기능이 있다. 기쁠 때 듣는 음악은 기쁜 감정을 더 증폭시킨다. 반대로 슬플 때 음악을 들으면 단기간은 마음이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심적 위안을 받기도 한다. 열을 열로 다스리는 이열치열(以熱治熱)처럼 ‘슬픔을 슬픔으로 치료하는’ 이애치애(以哀治哀) 기능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래의 가장 큰 순기능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엽 콘서트는 그의 노래로 인해 시카고 한인 특히 미국 정서에 더 익숙한 1.5, 2세들에게 “나 역시 한국인”이란 공감대를 형성케 했을 것이다. 동시에 잠시 잊었을 수도 있을 정체성을 새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리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올해 노벨 문학상은 미국의 대중가수 밥 딜런에게 주어졌다. 이 같은 파격은 비록 대중가요지만 음악은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문학적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인 1.5, 2세들이 한국 음악을 즐기면서 또래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체성을 한층 확립할 고정적 시공간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ik04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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