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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도 일주일마다 서울 변한다더라”

30년만에 한국 찾은 배기성 한인회장

이달 초 2016 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석한 배기성 애틀랜타 한인회장은 인천공항에서 숙소였던 강남 영동호텔까지 가는 길, 창밖 풍경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국에 살 때는 “한번도 한국의 경치가 멋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그에게 30년만에 바라본 파란 가을하늘과 절묘하게 뻗은 도로변의 소나무들은 미국과는 다른 운치를 풍겼다.

1953년생인 그는 ‘영동’ 출신이라고 말한다.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일대는 ‘강남’이라는 이름이 정착되기 전까지 영등포 동쪽이라는 의미에서 영동이라고 불렸다. 영동지구는 배 회장이 10살이 되던 해에야 경기도에서 서울시로 편입됐다.

용산구에서 태어난 배 회장은 강남 개발이 막 시작되던 어린 시절, 서초동 지역으로 이사했다. 계절마다 꽃들이 한가하게 흔들리던 집근처 화훼단지 자리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들어섰고, “뉴욕의 마천루 못지 않은 빌딩 숲”이 들어섰다. 그는 “택시기사마저 일주일마다 골목이 변한다며 헷갈리더라. 서울이 빠르게 변했다는 것은 익히 보고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실감하니 놀라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그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1988년 4월 서울은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었다. 다시 찾은 도시의 풍경은 알아볼 수 없을만큼 변해 있었지만, 30년만에 만난 벗들은 그대로였다. 배 회장은 “친구라는 게 만나면 옛날 생각이 나고, 바로 이놈 저놈 하는 게 아니겠냐”며 “다만 같은 나이에도 머리가 검고 젊어 보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대머리가 벗겨졌거나 병으로 고생해 부쩍 늙어뵈는 친구들도 있더라. 지나간 세월에서 연민의 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모국의 발전상을 직접 보고 “한인회장으로서 봉사하는 것이 미국 사람들 앞에서도 더욱 떳떳하다. 60년대 이민 1세대 들은 자녀들에게 한국을 잊게 하고 영어만을 가르치려 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자연스레 부모의 조국을 자랑스러워 하게 되어 기쁘다”며 “한국의 저력과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된 뜻깊은 여행이었다”고 말했다.


조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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