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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의 퓨전에세이]깊은 가을 이야기

메릴랜드 남쪽 구석이지만 미국사람들 할 건 다 하나보다. 요즈음 오이스터 축제니, 10월 맥주 축제니, 와인 축제니 하면서 몰려 다닌다. 그런가하면 고국의 뉴스는 설악산의 단풍소식을 전한다. 딴 해에 비해 일교차가 심했고 비가 많이 와서 단풍색이 더욱 곱다고 한다. 하루 5만 명 이상이 설악산을 찾는다니 고국이 더욱 그리워질 뿐이다.

원래 풍악의 단풍이 최상이지만 국토가 나뉘다보니 그 연맥인 설악산이 한국단풍의 시발점이 된다. 설악의 주봉인 대청봉은 9월 하순부터 단풍이 들기 시작해서 하루에 50미터씩 하강한단다. 수직으로 50미터, 수평으로 25킬로미터를 물들이며 내려온다니 지금쯤 남부지방은 절정을 이루고 있으리라.

단풍이 한 달씩 머무는 곳은 극히 드물다는데, 우리나라 단풍이 손꼽힌다고 한다. 음력 9월9일 산에 올라 단풍 한 가지로 비녀를 만들어 머리에 꽂으면 시집살이 쌓이고 쌓인 일 년 시름이 다 사라진다고 했다니 단풍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세상 사는 지혜가 있었던 조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 번의가을이 가고 있다. 좀 시원해지면 함께 산에 오르자던 약속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 약속 지켜져도 좋고, 안 지켜져도 좋다. 그이의 삼남매 여섯이 9월에 한 약속이니.



생각나는 그림이 있다. 막스 리버만이 1847년에 그린 그림, 제목은 ‘뮌헨의 비어 가르텐’(뮌헨의 맥주 정원)‘이다. 숲속에 놓인 긴 벤치와 테이블, 가족들이 모두 함께 가서 어른들은 술통에서 생맥주를 따라 내어 뜨거운 소시지를 안주 삼아 마시고, 아이들은 덩달아 신이 나서 숲속을 뛰어다니는 그림이다. 금세라도 동석하고 싶어지게 하는 이 멋진 그림을 그린 리버만은 유태계 독일인이다.

부유한 부모덕에 이웃 프랑스로 유학, 새로운 화풍을 제일 먼저 독일로 전하곤 했다. 바이마르와 파리유학을 거쳐 바르비죵으로 간 그는 바르비죵파에서 깊은 영감을 받고 밀레를 좋아했지만, 보불전쟁의 전흔이 채 가시지 않은 때라 밀레는 “독일 놈과는 상종도 하지 않겠다.” 했단다. 이 그림이 있는 베를린에 가보고 싶다.

해마다 이맘 때면 조국 전북 고창에선 국화축제가 열린다. 석정 온천지구와 질마제 미당 문학관 일대에 펼쳐진 10만평 국화 밭에서 가는 가을을 배웅하며 미당의 시를 외우는 이 있으리라. 우리 옛님들은 국화의 덕(德)과 지(志) 그리고 기(氣)를 높이 샀다. 일찍 심어 늦게 피니 군자의 덕이요, 서리를 이겨내고 피어나니 선비의 지이며, 물 없이도 피어나니 선비의 기라하여 국화 삼륜(德 志 氣)이라 했다. 봄에는 국화 싹으로 나물 무치고, 여름엔 국화잎으로 쌈 싸먹고, 가을엔 국화꽃 띄워 차 마시고, 겨울엔 국화뿌리로 김치 담가먹고, 국화꽃 이슬로 국로주 만들어 마시고, 꽃 말려 베개 속 채우고...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지시고/ 평원에는 바람을 풀어 주옵소서/ 가지에서 마지막 열매를 가득히 달리도록 도와주시옵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녘의 햇빛을 주시어/ 무르익는 것을 재촉하시고/ 무거워지는 포도 열매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주소서/ 지금 홀로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 것이며/ 잠에서 깨어나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나뭇잎 구를 때면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서성이는 모습으로 방황할 것입니다’
가을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릴케가 아니어도. 몇 번의 가을이 허여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기에 가을은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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