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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섭.김명희 화백이 사는 풍경

소호의 풍요와 폐교의 부재 사이에서

소호의 아파트 겸 스튜디오에서 김차섭, 김명희 부부. 뒤로 김명희씨의 칠판 그림이 보인다.

소호의 아파트 겸 스튜디오에서 김차섭, 김명희 부부. 뒤로 김명희씨의 칠판 그림이 보인다.

김명희 작 '서울에서 온 소녀들' (사진 왼쪽)

김명희 작 '서울에서 온 소녀들' (사진 왼쪽)

김차섭 작 '무한간' (MOMA 소장)

김차섭 작 '무한간' (MOMA 소장)

'세계 미술의 메카' 맨해튼 소호와 휴대전화도 켜지지않는 강원도 오지의 폐교. 이 상반된 두 세계를 오가며 작업하는 부부가 있다.

화가 김차섭(67).김명희(58)씨가 천장이 높은 소호의 로프트와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의 폐교를 왕복하며 작업해온 지 벌써 18년째다.

신라시대 장군의 기백을 떠올리는 김차섭씨와 단아한 신사임당 타입의 김명희씨. 지난 23일 한국 출발을 앞두고 만났다.

◇유목민과 정착민="사람은 원래 정착성 동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유목민의 유전자가 있지요."



김명희씨는 인류가 농경사회로 인해 정착하게 됐지만 결국 정처없이 떠나려하는 근성은 남아있다고 말한다. 글로벌시대에 전화 인터넷 iPod 블랙베리 등 문명의 이기로 사실 우리의 기동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이동성 인간' 이는 인류가 유목민으로 회귀하는 징조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1990년 이들이 한국으로 영구 귀국할 생각으로 찾아낸 폐교는 소양호의 건설로 인해 수몰된 38선 인근 교실 4개짜리의 초등학교였다. 김차섭씨는 일곱 가구 밖에 없는 첩첩산중 마을에 불도저와 노무자를 불러와 굽이굽이 산길을 닦고 길을 터서 잠자리와 작업실을 만들었다.

◇칠판과 자갈=소호의 풍요와 인 내평리의 부재(不在) 로프트의 편리함과 폐교의 소박함. '삶의 전쟁터' 뉴욕과 '자연의 휴식처'인 내평리는 우리 두뇌의 이성과 감성처럼 다르지만 사고의 균형을 지켜주는 제각기 다른 공간일 따름이다. 이들은 내평리 산골에서 샘솟는 영감을 발견한다. 그 곳은 화가에게 '예술의 유토피아'일지도 모른다.

천장이 높은 로프트와 얇은 창문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 폐교의 유리창. 김명희씨의 '칠판 그림'은 바로 여기서 태어나게 된다. 김씨는 92년 겨울 얇은 유리창 사이로 휘몰아치는 바람을 막으려고 각 교실의 칠판을 가져다 바람막이로 사용했다. 바람이 그친 어느 날 칠판을 캔버스 삼아 오일파스텔로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인생의 12~16년은 칠판 앞에서 보내잖아요. 그 위에 그림을 그리다보니 이미지가 파워풀해지는 걸 느꼈어요."

80년대 종이컵에 그린 전력이 있는 '동판화(에칭)의 대가' 김차섭씨는 지도를 갖고 인류의 기원과 정체를 탐구하기를 즐긴다. 그가 30여년 전부터 그려온 '자갈밭'은 강물에 떠내려가지 않은 채 도도하게 남아있는 존재의 위대함이 담겨 있다.

"우리가 강가를 지나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돌을 줍게 되잖아요? 화가란 가슴이 저미도록 그리운 것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김차섭씨의 자갈밭 동판화 '무한간'은 76년 현대미술관(MoMA)에서 구입해 영구소장했다. 2002년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한 그는 오는 6월 13일부터 서울의 통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우연과 필연=경주 김씨 김차섭 화백과 청평 김씨 김명희 화백은 공통점이 많다. 김차섭씨는 어려서 일본에서 자랐고 김명희씨는 대사였던 부친을 따라 일본과 영국 등지에서 성장했다.

이들은 서울대학교 미대와 프랫인스티튜트 대학원의 선후배이다. 김차섭씨는 이화여중을 거쳐 이화여고 미술교사를 지냈고 김명희씨는 모교인 이화여고의 미술교사로 들어갔다.

김차섭씨가 록펠러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판화 공부를 위해 뉴욕에 온 것이 74년. 김명희씨는 이듬해 뉴욕으로 유학왔다. 우연이 여러번 겹치면 필연인 것. 한인들이 만나면 반가워하던 시절. 바지런한 생활력에 반한 김차섭씨와 떡 벌어진 어깨에 매료된 김명희씨는 삶과 예술의 동반자가 된다.

이들은 77년 여름 이스트빌리지에서 산 은반지를 들고 시청에 가서 5달러짜리 즉석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니 올해는 결혼 30주년째이다.

◇가난한 화가 부자 화가= "경제적 독립이 정신적 독립"이라고 생각했던 화가 부부는 79년 사업을 시작했다. 매디슨애브뉴 77스트릿 고급 패션가에 부티크 '피놀라'를 열고 파리와 밀라노 등지를 다니며 고급 의류를 수입하다 팔았다.

김차섭씨는 "회사 비용으로 세계를 돌며 뮤지엄 구경도 하고 화가로서는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고 술회한다.

옷장사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한창 예술가 타운으로 뜨기 시작한 소호 스프링스트릿의 로프트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10년만에 사업과 결별했다. 부부가 전업작가로 그리기에 몰두할 수 있을 만큼 돈이 모인 것이다.

전업작가로 미학.과학책을 읽으며 사유하는 이들의 캔버스는 실재보다 더 큰 철학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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