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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에어] '상실의 시대'와 '순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아무리 흥미진진한 책이라도 여간해서는 밤을 새 가며 읽지는 못하는데 이 책은 동이 트는지도 모르고 읽었다. 그날 새벽,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허무한 감정은 잊고 싶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왼쪽 가슴이 뚫린 채 홀로 서 있는 책표지 속 인물이 딱 나인 것 같았다.

한국시간 26일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 코너에 '상실의 시대'를 순실의 시대'라고 패러디한 사진 한 장이 소개됐다.

손석희 앵커는 '상실의 시대'의 본래 제목은 비틀스의 노래에서 따온 '노르웨이의 숲'인데 한국에서는 유독 이 제목으로는 판매가 신통치 않았고 한 출판사가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을 붙여 다시 출간한 이후 책은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실'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마음을 울린 이유는 무엇일지 물었다. 그리고 그 상실이란 단어는 2016년 가을의 한가운데서 또 다른 무게로 사람들의 마음을 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이 뒤 흔들리고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배후에 각종 의혹이 가득한 인물이 있었고 그 인물이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특혜와 이득을 취해 왔다는 사실에도 나라가 조용하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게다가 그 인물은 실체를 알아 갈수록 평범한 시민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을 해왔고, 하고 있다. 대통령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고 바로 그 다음날, 의혹이 불거진 이후 종적을 감췄던 문제의 인물은 한 언론매체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대통령이 인정하고 사과했던 부분은 수긍했지만 이를 제외한 무수한 의혹에 대해서는 모르쇠를 일관했다.

연설문 수정에 대해서는 오랜 친분으로 심정 표현을 도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을 오래 봐 왔기 때문에 마음을 잘 알고 연설문 수정 등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사무실에서 청와대 보고서를 매일 봤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또한 문제의 태블릿 PC는 본인의 것도 아닐 뿐더러 사용법도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요동치는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여야는 특검에 합의했다. 그러나 양측은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이는 특검의 방식과 대상을 두고 시작부터 부딪치고 있다. 여당은 대통령이 특검 후보 임명에 관여하는 상설 특검을 야당은 별도 특검, 즉 대통령의 임명 권한을 완전히 배제한 특검을 주장하고 있다. 제대로 된 특검을 구성할 수 있을지의 여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 아직 최순실씨의 신병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아팠던 이유는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한 것에 대한 위로는 온전히 나의 몫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 때문이었다. 뭐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을 위로해 줄 존재는 결국 나밖에 없다는 냉혹함.

'상실의 시대', '순실의 시대'가 언급된 앵커브리핑에서 손 앵커는 "모두의 마음은 며칠 사이 분노보다는 차라리 자괴에 아팠습니다"라고 말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순실의 시대'를 살았던, 살고 있는 국민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위로받아야 하는가. 이번에도 위로는 국민 스스로의 몫인가.


부소현 JTBC LA특파원·차장 bue.sohyu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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