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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라밀 커피' 크랙 민 대표…"놀이처럼 사업하니 마니아들 놀이터 됐네요"

중학생 때 로스팅 배워
19세에 커피 사업 시작
빚더미에도 제품개발 '뚝심'
럭셔리 브랜드로 성장시켜

유명 식당·호텔 등에 납품
카페 오픈하며 인지도 쌓아
미국 대표 푸드 잡지 선정
'베스트 카페 톱10'에 뽑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카페 안은 몽환적이다.

더할 나위 없이 여유로운 표정의 사람들이며 낮은 조도 밑 테이블에 놓인 하얀 커피 잔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유리창 저편은 딴 세상처럼 느껴진다. 다시 문득, 달콤 쌉쌀한 커피 향에 홀린 듯 이끌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벚꽃잎 눈처럼 쏟아지던 대학가 골목 카페였는지 가을 안개 자욱한 광화문 서점 안 커피숍이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그 시절 그 추억이 띄엄띄엄 그러나 강렬하게 스쳐간다. 그래서 세상 모든 카페는 팍팍한 현실에서 잠시 비껴난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그 유리창 너머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이, '라밀 커피'(lamillcoffee.com) 크랙 민(37)대표다. 민 대표를 커피향 방울방울 피어오르는 실버레이크에 위치한 라밀 커피숍에서 만나봤다.

#열아홉 커피 장인



LA에서 나고 자란 그가 커피 사업에 뛰어 든 것은 그의 나이 열아홉 되던 해인 1997년. 부친이 하던 커피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어머니와 함께 '라밀' 브랜드를 론칭하고 심기일전 다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집안 형편 탓 얼떨결에 떠밀려 커피사업에 뛰어 든 것만은 결코 아니다.

"열 살 무렵부터 아버지 커피공장이 제 놀이터였죠.(웃음) 물론 경영난으로 두 번이나 문을 닫았지만 중학생 때 이미 다양한 커피를 맛보고 커피 로스팅을 배우면서 오묘한 커피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놀이삼아 시작한 커피 로스팅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부친의 공장에서 그 누구도 쫓아 올 수 없을 만큼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커피에 대한 열정만으로 사업이 굴러 갈 리 만무. 어머니가 옆에 있었다곤 하지만 로스팅에서부터 마케팅, 세일즈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경영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열아홉 소년이 감당하기엔 결코 만만한 무게가 아니었으리라. 결국 1년도 채 안 돼 100만 달러가 넘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당시 주변에선 빨리 나가서 작은 어카운트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냐며 우려의 시선을 보냈죠. 물론 당장 영업을 뛰면 조금이라도 돈은 들어오겠지만 그 시간에 제품개발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닌 라밀을 최고급 브랜드로 키워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훨씬 컸으니까요."

그의 이런 커피에 대한 장인정신과 배짱은 오래지 않아 빛을 발했다. 2000년 라밀 커피의 진가를 알아본 미슐랭 스타 식당인 프로비던츠를 비롯, 미스터 차우, 리츠칼튼 등 최고급 식당과 5성급 호텔에 커피를 납품하게 되면서 라밀은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성공신화를 쓰다

이후 라밀은 인텔리젠시아, 스텀타운 등과 함께 명실상부 LA 스페셜티 커피 1세대로서 LA 스페셜티 커피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라밀 커피는 2003년 알함브라에 4만 스퀘어피트 규모의 자체 사옥과 공장을 지어 이전했고 직원 수도 3명에서 90여명으로 늘어났다. 현재 라밀은 미국 내 400여 어카운트를 확보하고 있으며 2001년엔 서울에 지사를 설립해 한국 호텔과 유명 식당에 납품을 하고 있는 등 해마다 고속 성장을 이뤄가고 있다. 이처럼 2000년 이후 라밀 커피는 식음료 업계에서 알아주는 유명 브랜드가 됐지만 대중들에게 보다 더 친숙해진 건 2008년 실버레이크 길에 '라밀 커피'를 오픈하면서부터.

눈길 사로잡는 붉은 벽돌 외관과 클래식함과 모던함이 공존하는 '느낌 있는' 인테리어에 독특한 커피 맛으로 실버레이크는 물론 LA인근 커피 마니아들의 입맛까지 단숨에 사로잡은 것이다.

"카페를 오픈할 때 제가 마시고 싶은 커피, 제가 가고 싶은 카페를 제대로 만들어 보자 작정하고 시작했죠. 덕분에 카페 준비기간만 2년이 넘게 걸렸어요.(웃음)"

프랑스에서 공수한 19세기 앤티크 샹들리에와 고풍스러운 벽지부터 인테리어 컬러에 맞춰 특별 주문한 이탈리아산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어느 것 하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그 후 8년 세월이 흘렀지만 라밀 커피는 갈 때마다 새롭다. 늘 새로운 커피와 메뉴를 개발할 뿐 아니라 지난해에는 한국 명품 자기 브랜드 '광주요'에서 모든 식기를 주문 제작해 공수해오기도 하는 등 라밀은 카페를 찾는 이들에게 늘 신선한 감동을 준다. 이런 그의 세심한 경영 덕분에 라밀 커피는 오픈 첫해 미국건축가협회(AIA)가 선정한 '레스토랑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고 이후 유명 푸드 매거진 '보나페티'(Bon Appetit)와 '푸드 앤드 와인'이 선정한 '베스트 카페 톱10'에도 이름을 올렸다.

#놀이하듯 사업 한다

그가 요즘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는 사업은 라밀 커피숍 체인 확장. 2년 전 LA공항 톰브래들리 청사에 2호점을 연 이래 내년엔 LA 베벌리센터와 하와이에 3·4호점을 오픈하는 등 앞으로 미 전역에 카페를 오픈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최근엔 라스베이거스 MGM그룹 소속 호텔 내 식당 15곳에 라밀 커피를 납품하기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덕분에 매출 규모도 껑충 뛰어 첫해 3000 파운드 가량이던 커피 판매량이 지난해엔 50만 파운드를 기록했다. 커피 외에도 그가 관심을 갖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커피 용품. 10년 전 일본 출장길에 마셔 본 드립커피의 매력에 빠져 2008년 드립커피 용품으로는 세계 최고로 알려진 일본기업 '하리오'(Hario)의 미국 독점판매권을 따내 자회사를 설립한 이래 매년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이야 드립커피가 그리 낯설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소수의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던 드립커피가 과연 미국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제가 먹고 싶고, 제가 가고 싶은 곳이냐가 의사 결정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에요. 제가 반한 커피 맛, 음식, 분위기를 친구에게 소개하듯 고객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거죠. 사람들이 카페를 찾고 색다른 커피를 마셔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결국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는 거니까요."

사업을 놀이하듯 하는 이 남자, 물론 일견 우아해 보이는 백조 같은 몸짓 이지만 고요한 수면 밑에선 모든 사업가들이 그렇듯 끊임없이 밀려오는 문제들로 동동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그는 '라밀 커피'라는 그만의 세계에서 뛰노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유쾌하다는 표정이다. 라밀 커피가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비결일 것이다.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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