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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패거리 정치와 국민 스트레스

이종호/OC본부장

# '세계인이 놀라는 한국사 7장면' 책을 낸 덕에 우리 역사에 대해 강연할 기회가 종종 있다. 최근엔 동서대학교 미주 캠퍼스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했다. 그런데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신나게 이야기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만큼 세계인이 깜짝 놀랄 만한 것은 없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 학생이 이메일로 물어왔다. "미처 몰랐던 우리 역사 다시 돌아보게 되어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부끄럽습니다. 도대체 이게 나라인가요?"

미국 사는 한인들도 대부분 같은 심정이 아닐까 싶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숨이고 탄식이다. 비즈니스가 손에 안 잡힌다, 밥맛도 없고 자꾸만 부아가 돋는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외국인 친구 앞에 얼굴을 못 들겠다는 사람도 많다. 태평양 건너오는 고국 뉴스가 이렇게까지 우릴 부끄럽게 하고 스트레스가 된 적이 언제 또 있었나 싶다.

# 정치가 백성에게 주는 스트레스, 그 뿌리는 깊고 길다. 순조-헌종-철종으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60여년은 그 절정이었다. 그 시기, 왕은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왕실 외척 중심의 소수 가문이 국정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역사는 그것을 세도정치라 기록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나라 기강은 허물어지고 탐관오리가 득세했다.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가운데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당시 사회가 얼마나 부패하고 참혹했는지는 삼정(三政) 문란의 역사가 말해준다. 삼정이란 국가 재정 수입의 근간이었던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을 말한다. 토지에 대해 온갖 명목의 세금을 물리면서 농사를 못 짓는 황무지에까지 세금을 매겼다(전정 문란). 갓난아이까지 군적에 올리는가 하면 이미 죽은 사람도 그 가족들로부터 계속 군포를 거뒀다(군정 문란). 춘궁기에 쌀을 꾸어주고 가을에 싼 이자를 붙여 되돌려 받던 환곡은 천정부지 고이자로 변질되어 노골적인 수탈의 도구가 됐다(환곡 문란). 조선 후기 끊이지 않았던 민란들은 이런 '빌어먹을 세상'에 대한 민초들의 필사적인 항거였다.



19세기는 백성들의 의식이 점점 깨어나면서 새로운 사회질서와 정치제도에 대한 욕구가 팽배해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세도가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외면했다. 개혁에 대한 의지도 없고 능력 또한 없었다. 오로지 낡은 지배체제 유지에만 골몰했고 자기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했다. 구한말 국권 침탈 과정과 끝내 닥쳐온 망국의 아픔은 청산하지 못한 그런 세도정치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 지금의 나라꼴이 그때와 다르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0% 아래로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그럼에도 대통령 불쌍하다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 맞다. 불쌍하다. 하지만 정말 불쌍한 것은 국민이다. 원래 불쌍하다는 말은 권력자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약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쓰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러다 큰일 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지난 4년을 돌아보면 큰일은 이미 여러 번 났다. 경제는 망가져 가고 있고 외교는 뒤죽박죽이 됐다. 젊은이는 꿈을 잃었고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어 가진 자만 행복하고 갖지 못한 자의 삶은 점점 더 비루해지고 있다. 나라에 이만큼 더 큰일이 어디 있을까.

탄핵이니 하야니 여론이 비등하다. 하지만 당장 물러나느냐 아니냐보다 더 중한 것이 있다. 주인공 배역만 바뀐 패거리 정치가 또 다시 되풀이된다면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국민이 더 깨어 있어야 한다. 감시의 눈을 더 부릅떠야 한다. 그래서 세도정치 이래 반복되어 온 국민 농락 정치의 고리를 기필코 끊어내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의 '박근혜-최순실 사태'를 전화위복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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