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인물 오디세이] '도사' 크리스티나 김 대표…아트와 패션의 경계를 허물다

대학서 미술 전공한 1.5세
이태리 유학중 패션과 인연
1984년 LA서 회사 창립
스타·유명인사들 단골고객

천연염색, 천 재활용 고집
타임지 선정 '환경지킴이'
최근 밀라노·뉴욕·한국서
작품 전시회 개최해 주목


그곳엔 아트와 패션의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

무심하게 걸린 그녀의 '옷가지들'은 아주 오래 전 남도지방 어느 여염집 담장 너머 언뜻언뜻 보이는 무명 빨래 끝자락 같다. 그래서일까. 스튜디오 한켠 창틈 새 부는 바람이 좋아 잠시 발걸음을 멈춰서면 어디선가 그 담장 너머 대나무 향이 코끝을 스치는 듯도 싶다. 이 반짝이는 스튜디오의 주인장은 패션 브랜드 도사(dosainc.com)의 크리스티나 김(59) 대표. 가을이 완연한 늦은 오후, LA다운타운 도사 스튜디오에서 그녀를 만나봤다. 소박한 듯 개성 강한 자신의 패션과 꼭 닮은 그녀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눈 대화 속에서 지난 30년간 고집스럽게 보여준 그녀만의 남다른 패션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타고난 패션 디자이너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1971년 LA로 가족 이민 왔다. 그녀 나이 열다섯 살 때다. 밸리 지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고교 졸업 후 워싱턴 대학교에 진학, 미술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아트스쿨에 다니던 중 그녀가 만들어서 입고 다니던 옷에 반한 유명 수트 컴퍼니 대표에게 '길거리 캐스팅' 돼 그곳에서 패브릭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다섯 살 때 외할머니께 바느질을 배웠고 열한 살 무렵부터는 제 옷을 만들어 입을 만큼 어려서부터 옷 만들고 패브릭 갖고 노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당시 동양인이 거의 없던 이탈리아에서 체구 작은 아시안 여성이 아방가르드한 옷을 입고 다니니 눈에 더 띄었지 싶어요.(웃음)"

이렇게 운명처럼 패션과 인연을 맺은 그녀는 LA에 돌아와 1984년 도사를 론칭하고 2년 뒤엔 뉴욕 소호에도 부티크를 오픈했다. 도사라는 브랜드명은 한국에 있을 때 모친의 별명인데 워낙 옷 만드는 솜씨가 출중해 주변에서 '옷 도사'라고 불리던 것을 그녀가 기억하고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패셔니스타를 사로잡다

직원 4명 데리고 시작한 단출한 살림이었지만 도사는 얼마 가지 않아 뉴욕 멋쟁이들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심플하면서도 에지있는 그녀의 패션은 단박에 패셔니스타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할리우드 스타들은 물론 정·재계 유명 인사들까지 앞 다퉈 그녀의 옷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이 유럽에까지 알려지면서 1988년부터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도 주문이 밀려들었다. 이처럼 그녀의 패션이 옷 좀 입는다는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디자인에 이제는 그녀의 시그니처가 돼 버린 핸드 스티치(손바느질)때문. 그녀의 패션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이 손바느질과 패치워크 작업이다. 한국의 조각보에서 영감을 받은 이 수작업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그녀의 컬렉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해 이제는 도사의 상징처럼 돼 버렸다.

"1990년대 인도와 멕시코 등에 출장을 다니면서 패브릭 한 장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힘든 공정을 거치는지 깨닫게 되면서 쓰고 남은 조각 천을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한국 전통 조각보가 생각났어요. 그 조각 천들을 이으려고 시작한 손바느질이 오늘에 이른 거죠."

그녀의 이런 남다른 패션 철학은 지난 30년간 패션쇼를 열지 않은 이유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패션쇼를 한 번 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요. 그리고 그 비용은 옷값에 반영될 수밖에 없고요. 그런 불필요한 곳에 제 고객들이 돈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웃음)"

그녀의 이런 올곧은 패션 철학과 뚝심은 진심으로 옷을 사랑하는 패션 피플의 공감을 얻으면서 도사는 승승장구해 1990년대부터는 침구류와 인테리어 소품까지 론칭하고 유럽은 물론 일본과 남아공 등 세계 20여 개국에 판매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이처럼 색깔 있는 패션세계로 인기를 얻어가던 도사가 2000년대 들어서는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다. 2003년 시사 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선구적인 환경지킴이' 뽑히면서 친환경 아티스트로 재조명 받은 것이다.

물론 그녀의 이런 환경 친화적인 패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도사는 오래전부터 유기농 코튼만을 사용하고 패브릭 재활용은 물론 표백제를 쓰지 않는 천연 염색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처럼 세상과 패션에 대한 남다른 그녀의 철학 때문일까. 몇 년 전부터 그녀는 패션디자이너를 넘어 아티스트로서도 활발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LACMA의 '웨어 라크마'(Wear LACMA) 봄 컬렉션에 참가해 주목을 받은 그녀는 올해 들어서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이다.

지난 4월 밀라노 트리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시작으로 5월엔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참여했으며 뉴욕 스미스소니언 디자인 뮤지엄에서도 '패션, 텍스타일 재활용'이라는 주제로 내년 4월까지 전시가 예정돼 있다. 또 지난달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에도 참가 차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APAP 전시에서 그녀는 안양천 일대의 바위에서 모티브를 얻은 쿠션 작품을 선보여 관람객과 평단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앞으로도 그녀는 다양한 친환경 프로젝트 및 작품 전시에 집중할 예정이며 대신 새로운 패션 컬렉션은 선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혹시 패션디자이너에서 아티스트로 전업(?)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녀가 웃으며 손사래 친다.

"그런 건 아니에요.(웃음) 전 디자이너로서의 작업과정이 참 좋아요.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패션디자이너는 패브릭부터 제작까지 여러 사람들과 공동작업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인데 거기서 오는 매력과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죠."

그녀는 이야기 내내 이 '커넥션'을 강조했다. 언뜻 전혀 다른 것 같은 세상 모든 사람들은 실은 연결돼 있고 내가 사는 세상과 당신이 사는 환경이 연결돼 있듯이 세상 무엇 하나 연결돼 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지금껏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지인들과 둘러 앉아 수작업을 하며 혹은 수백 수천 장의 조각 천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며 얻은 삶의 지혜이리라. 그리고 그녀가 만든 옷과 작품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그녀의 진심어린 목소리이기도 할 것이다.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