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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고통 그리고 현존

김정국 골롬바노 신부/ 성 크리스토퍼 성당

우리는 때론 '고통'이란 말을 듣는 것도 무겁게만 여겨져서 피하고 싶어진다.

남의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도 사치 같다. 이런 상태에서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해 말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신앙인이라 그냥 믿는다고 말하지만 생활에서 그때 그때 감지되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다. 와 닿는 현실은 암울해만 보이고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적 회피로 나약하기만 한 자신을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병원 창 가에서 그저 넋을 놓고 밖을 바라보고 있던 어떤 부인을 만난 기억이 있다. 병실을 찾아 들어간 신부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신부님, 저도 하느님은 믿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 저 하늘에 계시다는 것 믿긴 합니다. 저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분은 거기 그냥 계시고 저는 여기서 주어진 상황과 싸우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고통 속에서 말이지요." 고통에 짓눌려 많이 아파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그저 그 옆에서 있어주고 기도해주는 것밖에는 말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당신 글에서 이 고통에 대한 신앙의 답을 이렇게 제시하신다. 세상에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악 앞에서 인간은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며 '왜, 언제까지 이렇게 하십니까?'라고 울부짖는다. '악의 스캔들'에서 터져 나오는 이 고뇌의 질문에 하느님은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떤 원리로도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저 십자가에 달리신 아드님의 희생을 보여주신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심오하고 본질적인 희생제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는 골고타 언덕에서 한 번에 모두를 위해 이루신 희생제물로 우리 앞에 당신을 드러내신다.



전쟁과 죽음과 증오의 시대 한복판에 신앙의 증거자로 사셨던 교황님은 인간 사회가 얼마나 사악하고 처참할 수 있는지를 경험하셨다. 병실에서 만난 부인처럼 인간은 고통 속에서 마주하는 불가사의한 이 침묵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고통에 말을 잃고 자신 안에 주저앉아 "그분이 있기나 한지 몰라. 나하고 전혀 상관없잖아"라는 결론을 낸다. 하느님은 왜 그 시간을 혼자 내버려 두시고 침묵하시는 것일까. 우리는 불완전한 이 세상에서 자신이 유일한 보루처럼 의지하고 살다가 그 바닥이 허물어지면 공허한 자신을 주체못하고 본능적 생존에 모든 것을 걸고 산다. 죄와 악에 대한 체험은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 그저 절망만을 안겨줄 뿐이다.

딸을 마귀에게서 구해주기를 청한 복음 속의 가나안 여인도 깊은 침묵의 시험을 기다려야 했다. 절박한 요청에도 예수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싸늘한 냉대였다. "나는 길 잃은 양인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는 말씀은 명백한 거절로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냉정과 수모와 거절에도 더 낮게 엎드려 그분의 선의에 내어 맡겼다. 민낯의 하느님 현존은 바로 골고타의 십자가에서 드러났듯이 그를 닮은 우리의 가장 절망스런 위기의 시간에 찾아온다.

bano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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