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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품격있는' 패자를 위하여

[LA중앙일보] 발행 2016/11/09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11/08 19:34

선거는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치러지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다. 승자는 선이 되고 패자는 악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선악의 구분보다는 정치 철학과 통치 역량이 당락을 결정한다. 여기에 후보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대중적 인기와 시대적 상황이 행운의 승자를 만들기도 한다. 브루킹스 연구소 등이 기독교를 믿는 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부도덕한 후보가 공직의 의무를 다하고 윤리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72%가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선거는 착하고 도덕적인 인물을 뽑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캠페인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역대 최악의 대통령 선거였다는 오명을 벗지 못했지만 결국 승자는 정해졌다. 이제 국민들은 누구에게 투표했는가에 상관없이 당선된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에서 4년을 '살거나' 혹은 '견뎌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대결은 획기적인 선거였다. 미국 최초로 남과 여의 구도로 치러진 대선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 역사상 주요 정당의 첫 여성 대통령 후보였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 국무장관, 연방 상원의원 등의 화려한 정치경력을 배경으로 민주당의 첫 여성후보로 등장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 경력이 전부한 아웃사이더였다. 부동산업에서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 공화당 경선 때만 해도 잠깐 흥행몰이를 하고 무대를 떠날 것으로 생각됐지만 결국 본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서는 끈기를 보여주었다.

두 후보의 경력만큼이나 상이하게 이번 대통령 선거의 지지층도 갈렸다. 보수성향의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한 트럼프 지지자와 소수계, 여성 위주의 클린턴 지지자 의 한판 승부였다.

선거 유세 동안 트럼프는 인종, 종교, 성별, 장애 등 이제까지 정치계에서 금기시 돼왔던 발언들을 무차별로 쏟아냈다. 보통의 정치인 같으면 정치 생명이 끝날 정도의 망발 수준이었지만 트럼프의 입을 거치면 면죄부를 받았다. 오히려 이러한 즉흥적이고 품격없는 말들이 트럼프의 선거캠페인을 이끌어온 힘이라고 평가하는 선거전문가가 있을 정도다.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도 후보 탈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중대사안이었다. 특히 선거를 며칠 앞두고 터져나온 연방수사국의 이메일 재수사는 선거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었다.

트럼프가 수준없는 '막말'의 연속이었다면 힐러리는 교묘한 '거짓말'로 일관했다. 정의와 불의, 호감과 비호감, 유능과 무능, 중진과 신예 등의 일반적인 선거 이분법은 이번 선거에 적용되지 않았다. 자신 은 선으로, 상대 후보를 악으로 규정하는 치열한 진흙탕 싸움의 연속이었다.

이제 대통령 선거는 끝났다. 하지만 선이 이긴 것도 아니고 악이 승리한 것도 아니다. 지지한 후보는 선이 되고 반대한 후보는 악이 되는 도식이 아니다.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이고 결국은 미국민으로 하나가 된다.

패자의 승복은 종종 승자의 영광보다 더 가치가 있다. 2000년 대선에서 전체투표에 이기고도 선거인단에서 패배한 앨 고어는 승복 연설을 통해 '이제까지 무수한 대결을 했지만 승자와 패자 모두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지도력을 잃으면 국가가 위험에 처하고 세계에 대한 의무를 할 수 없다. 지도력은 하나된 목소리에서 나온다. 미키 에드워즈 전 공화당 연방하원은 LA타임스 기고에서 미국 민주주의 가치와 전통을 지키고 미국을 하나로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승자가 아니라) 선거결과를 승복하는 패자라고 했다.

패자의 품격있는 승복은 승자의 영광을 빛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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