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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LA타임스 극찬 '바루' 어광 셰프

"발우공양 마음으로 요리에 영혼을 담고 싶어"
세계적 미슐랭 식당 거쳐
작년 LA에 레스토랑 오픈

간판도 없이 2명이 운영
발효식품 소재 퓨전 한식

신문·잡지서 열띤 찬사
문밖까지 줄 설만큼 인기
"누구나 평등하게 즐기는
격식없는 파인다이닝 꿈꿔"


여기 요리에 미친 남자가 있다.

요리라는 화두 들고 세상 곳곳을 수도승처럼 떠돈 남자, 퓨전 한식당 바루(Baroo)의 오너셰프 어광(35)씨다. 샌타모니카 길 허름한 쇼핑몰에 위치한 그의 식당은 간판도 없고 내부엔 그저 커다란 목제 식탁 하나에 철제 의자 20여개가 전부다. 오픈한 지는 1년 조금 넘었다. 그러나 지금 바루는 미 식당업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LA타임스 유명 푸드 비평가인 조너선 골드 기자가 '미래의 맛'이라 극찬했는가 하면 최근 '보나페티'가 선정한 '2016년 미국 최고의 뉴 레스토랑 탑5'에 선정되는 등 미 식당업계와 미식가들 사이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음식 만드는 것이 좋아, 요리공부가 좋아 뉴욕, 스페인, 코펜하겐, 이탈리아, 바하마 등 전 세계 대륙 곳곳을 누빈 이 남자, 미슐랭 스타 식당 근무 경력이 빼곡해 당연히 화려한 요리로 승부할 것 같은데 웬걸 스님들의 식사의례인 발우공양에서 식당 이름을 따왔다고 하니 그의 소박하고 정갈한 식탁이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력과 요리철학을 가진 그를 그의 식당에서 만나봤다.

#진정한 요리 찾아 삼만리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고교시절부터 '먹는데' 관심이 많아 2000년 외식조리과정을 배울 수 있는 경기대 관광학부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인 2007년 세계 최고 요리학교인 뉴욕 CIA에 입학했고 졸업 후 셰프 지망생들에게 꿈의 레스토랑이라 불리는 미슐랭 3스타를 보유한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인 뉴욕 '다니엘'에 취직했다.

"다니엘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죠. 세계 최고의 식당 주방답게 군대만큼 엄격하고 빡 센 곳이었는데(웃음) 그곳에서 현장이 무엇인지 요리의 원칙과 장인정신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그곳에서 1년 정도 있으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다니엘 싱가포르점 오픈 멤버로 합류할 것을 제안 받기도 했지만 그는 제안을 고사했다. 그 무렵 하고 싶은 공부가, 가고 싶은 대학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이탈리아 폴렌조 소재 미식과학대학이다. 슬로푸드 운동의 모태가 된 이곳은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음식 인류학으로 유명한 대학.

"유명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회의감도 들었어요. 식당과 음식에도 계급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회의가 들면서 음식 인류학을 공부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음식의 기본과 근원에 대해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열망이 컸죠."

그 후 유학자금 마련을 위해 그는 유명 일식당 '노부'의 바하마점에 지원해 근무했다. 그리고 2년 뒤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발효식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발효식품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 취득 후 그는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으로 건너가 자연주의 발효 요리로 유명한 미슐랭 3스타 식당인 '퀴케 다코스타'를 거쳐 자연주의 요리로 각광받는 덴마크 코펜하겐 '노마'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발우공양 닮은 바루

'세상 모두에게 평등한 맛있는 요리'라는 화두를 붙잡고 떠돈 길 위에서 그가 무엇을 깨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랜 해외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내 그릇에 영혼을 담고 싶다'는 일념하나로 식당 오픈을 준비했다. 그것도 서울이 아닌 이역만리 타국 LA에서.

"노마에서 일할 때부터 해외에서 제 식당을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던 거죠."

그 넓은 세상이 LA가 된 것은 식당 창업을 위해 의기투합했던 대학 선배가 LA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가게 터를 잡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테리어에서부터 식기구입까지 모두 두 남자가 직접 했다. 간판도 이전 식당 것에서 알파벳 철자를 떼는 걸로 대신했다. 결과적으로 빈 간판만 걸려 있는 셈.

"돈도 없었고요.(웃음) 간판을 거는 순간 식당이 그 이름에 얽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예 달지 않았죠. 결국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제가 추구하는 건 격식 없는 파인 다이닝일 겁니다."

그의 이런 신념은 매주 홀푸드 마켓에서 신선한 유기농 재료들을 구입해 쓰지만 메뉴 가격은 9~15달러로 저렴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무엇보다 바루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메뉴에 한국전통 발효식품이 들어가는 것. '아시안 피버'엔 새우젓을, '소꼬리 라구 파스타'엔 고추장, 리조토엔 누룩을 이용하는 등 그의 요리들은 신선한 식재료들과 발효식품이 어우러져 절묘한 맛을 재창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착한 완벽주의자의 식탁

지난해 9월 문을 연 바루(baroola.strikingly.com)는 첫 석 달간은 말 그대로 파리만 날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인기 푸드웹진 이터LA(la.eater.com)에 식당이 실리면서 조금씩 바빠지기 시작했다. 연달아 LA타임스에까지 소개되자 남자 둘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분주해졌다. 주문 후 음식이 나오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릴 때도 있고 계산을 할라 쳐도 주인장 둘이 주방 안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면 기다려야 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런 '불친절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바루는 LA 미식가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식당 밖까지 줄 서는 일이 비일비재해졌고 이 조그만 식당에 하루 평균 100여명이 다녀갈 만큼 성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 이르자 그의 얼굴빛이 어두워 졌다.

"꿈같은 현실이 이루어지니까 행복했죠. 그런데 너무 유명해지고 고객이 늘수록 행복감은 줄어만 갔어요. 어느 날 초심과 멀리 떨어져 기계처럼 요리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운영할 바엔 식당 문 닫고 한국으로 돌아갈까도 심각하게 고민했죠. 여전히 마음이 복잡해요."

동안거(겨울철 스님들의 집중 수행기간) 해제 후 산문 밖으로 나온 납승(衲僧)의 모습이 이러하려나. 화두참구(話頭參究) 용맹정진 하였건만 뭐 그리 못마땅한지 스스로 자신의 어깨에 죽비를 꽂는 이 냉정함이라니. 순간 이 완벽주의자의 식탁에 왜 그리도 사람들이 마음을 빼앗겼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다시 산문 밖을 나서 만행(萬行)길에 오를 그의 여정이 몹시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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