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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에어] 촛불에 녹아든 학생들의 분노

 
매년 이맘때 쯤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한국발 기사가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일제히 실시.' 올해는 한국시간 17일 60만6000여명이 시험에 응했다. 새벽부터 나와 선배들을 목청껏 응원하는 후배들, 두툼한 방한복으로 무장한 학생들, 굳게 닫힌 시험장 문 앞을 서성이는 부모들의 모습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수능을 본 지는 까마득하지만 수능장 풍경은 매번 콧잔등을 시큰하게 한다. 이른 아침 싸늘한 바람을 가르며 지옥문과 같은 수능장으로 들어가는 수험생의 간절함을 기억하고, 그런 자식의 마음을 알기에 더 바짝바짝 타는 부모의 심정도 이제는 조금 더 헤아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아침 등교시간 오전8시, 하루 7~8교시, 수업이 끝나면 시작되는 자율학습. 골목이 어두워 아빠는 거의 매일 밤 버스정류장에 나와 딸을 기다려야 했다. 방학은 방학이 아니었다. 담임은 방학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대학 떨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고 엄포를 놨고 방학의 3분2는 보충수업을 들으려 학교에 가야 했다.

대학 가기를 원하는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누구든 치러내야 하는 이 고문과 같은 시간들. 그런데 이런 시간을 감히 뛰어넘은 사람들이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고등학교 3학년 출석일수는 고작 17일. 해외에 나와 있는데도 출석으로 기록되고 우수 교과상까지 받았단다. 말 탄다는 핑계로 학교를 고작 한달도 다니지도 않은 정씨는 이화여자대학에 당당히 입학했다.

최순실씨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조카 장시호씨는 더 어이없다. '가, 가, 가'로 도배된 고교 성적표를 갖고도 연세대학교에 성적장학금까지 받고 들어갔다. 고등학교 3년을 거의 학교와 도서실에서 살다시피 해야 하는 애처로운 수험생들의 피를 거꾸로 솟게 할 일이다.



고교시절부터 정유라씨의 라이벌이었던 승마 유망주 학생의 아버지 김모씨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아들에게 "너는 행운아다"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아들은 고교 3학년 우승했지만 2위를 한 정유라씨 측이 결과에 이의를 제기해 승자에서 밀려나야 했다. 경기 다음날 경찰이 심판위원장을 불러 조사했고 이후 정씨측의 편을 들어 주지 않았던 승마협회 간부 이름이 적힌 이른바 '살생부'가 돌아 담당자들이 협회에서 밀려났다.

이후 정씨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4위를 차지해 국가대표가 됐지만 5위에 그친 김씨의 아들은 아시안게임에 나가지 못했다. 국가대표 선발전 판정에 이의를 제기한 김씨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의 세무조사 압박까지 받았다고 한다. 최순실씨의 파워를 등에 업고 마치 날개를 단 듯 원하는 것들을 손에 넣었던 정씨를 지켜본 김씨 부자의 당시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지만 행운아처럼 보였던 정씨는 대학 특혜입학 등의 의혹으로 소환 조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번번이 정씨에게 밀려 고배를 마셔야 했던 김씨의 아들은 학업과 훈련을 병행하며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정씨가 누렸던 각종 특혜는 독이 됐고 김씨의 아들이 겪어야 했던 온갖 고초는 약이 됐다. 최씨 모녀의 파워에 밀려 아들이 억울한 패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김씨는 이제서야 아들에게 "내가 만약 최순실처럼 힘이 있었으면 벌써 구속되고 너는 독일로 도망가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주말 열린 제4차 대국민 촛불시위에 수능을 마친 학생들이 대거 참여했다. 수능 뒤풀이 대신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학생들의 분노는 그 누구보다 컸다. 꾹 참고 열심히만 하면 공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책과 씨름해야 했던 학생들이 받은 상처에 대한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


부소현 JTBC LA특파원·차장 bue.sohyu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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