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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급변점 이후의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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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6/11/22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11/21 19:13

안유회 / 논설위원

"(26일 예정된 촛불집회에) 300만 명이 모인다고 하면 율곡로를 내주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시민단체의 말이 아니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아무리 가정법이라도 해도 믿기 어려운 발언이다. 시위군중 규모를 300만 명으로 상정했다. 그것도 경찰청장이. 100만 명이 아무 것도 아닌 듯 200만 명도 아니고 300만 명이다.

이 발언은 지금 한국 상황이 급변점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만하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즉 급변점은 무엇인가가 갑자기 뒤집어지는 순간을 의미한다. 원래 어떤 지역에 새로운 인종이 들어와 일정 비율을 넘어서면 기존에 거주하던 인종이 급속히 떠나는, 특히 백인 이주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였다. 급변점이라는 번역어에서 알 수 있듯 중요한 것은 천천히 진행되던 현상이 어느 순간에 이르면 순식간에 나타나는 맹렬한 속도다.

이제 몇 년은 지난 일처럼 가물거리지만 처음 최순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이 언론에 등장했을 때 두 개의 맞불 카드가 나왔다. 첫 카드는 참여정부 시절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의견을 구했다는 종북 주장이었다. 이 카드가 통하지 않자 청와대는 개헌 카드를 꺼냈지만 절대반지라 할만한 개헌은 JTBC의 대통령 연설문 유출 보도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소환, 구속, 구속예정인 공직자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보좌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이른다. 대통령은 검찰 공소장에서 "여러 범죄 사실 중 상당 부분 공모 관계"라고 적시됐다. 또 "피의자로 공식 입건됐다." 우병우 재소환이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소환 의견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검찰 수사는 막 시작됐지만 국정조사와 특검은 출발도 하지 않았다. 100만 명 규모를 넘은 시위군중은 경찰청장 입에서 300만 명이 거론될 정도로 커져 사퇴를 압박하고 있고 야당과 새누리당 일부는 탄핵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모든 것이 지난달 24일 JTBC 보도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은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상황전개 속도는 현기증이 난다. 전형적인 급변점 현상이다.

청와대는 계속 카드를 내며 반발하고 있지만 급변점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검찰의 대면 수사를 거부하고 거국총리 카드를 거두고 한일군사정보협정과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는 것으론 역부족이다.

어떻게 국정 시스템이 한순간에 이렇게 무너질 수 있는지는 두고두고 해결해야 될 문제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박근혜 대통령 이후다.

국정 시스템은 지금까지 형식만 갖추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검찰의 구속과 소환으로 무너진 상황이다. 게다가 시간은 한국 편이 아니다. 당장 21일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은 미국을 방문해 차기 미국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경우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거론했지만 공식 요청한 것도 아니고 트럼프 당선인은 아직 대통령에 취임도 하지 않았는데 지레 먼저 올려주겠다고 한 것이다. 협상의 기본에도 어긋나고 내부 토론을 거친 것인가도 의문스럽다. 게다가 그는 "국방예산을 더 많이 투입하기 위해 복지 등 다른 예산을 축소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이런 중요한 사안이 방위사업청장이 의견을 밝힐 일인가 의아하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국정 운영을 할 수 없고 국정 시스템이 와해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면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정치권이 빨리 여론을 수렴하고 타결점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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