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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누가 이웃인가?

김정국 골롬바노 신부/ 성 크리스토퍼 성당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은 복음에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던진 유명한 질문이다. 그는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먼저 던졌고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냐?"라고 되묻는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것은 유다인들의 독특한 대화 방식이다.

예수님은 이번에도 되묻는 질문을 던지시며 악의적 질문을 던진 상대가 의도하는 덫을 비켜 문제의 핵심으로 다가가신다. 그와 달리 자신이 잘 알고 있음을 자랑이나 하듯이 율법 교사는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해 훌륭한 답을 내놓는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율법 교사의 앎과 질문은 전혀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는 즉시 예수님께 "너가 저의 이웃입니까?"하고 질문한다. 사실 그는 다른 유다인들 처럼 같은 고장 사람, 동족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밝히지 않고 그저 한 사람이라고만 말하고 있다. 그 사람은 강도를 만나 옷을 벗기고 맞아 초주검이 되어 버려졌다.



사제가 지나가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고, 레위인도 보았다. 그런데 둘 다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멸시하고 상종도 하지 않는 어떤 사마리아인이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구해준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건 앞에 예수님은 '너는 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신다. 너무나 명백한 상황이었던 만큼 예수님과 논쟁을 하고자 한 그도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얼떨결에 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어떤가? 본질을 흐리고 자신의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 모든 것을 논쟁거리로 삼고자 하는 의도로 대화하지 않는가? 명백한 것마저 논쟁만 일삼으면서 그것을 실천할 의지는 전혀 없는 경우가 있다. 사랑의 의무에 한계를 두고자 애쓰는 율법 교사처럼 오늘날 우리도 자신의 자의적이고 좁은 시각에서 세상을 편을 갈라 놓는 일을 하면서 예수님이 들려주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쉽게 잊고 살지는 않는가? 사랑은 실천하는 의지이지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불임의 논쟁 대상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예수님 때나 다름없는 것 같다. 공감하는 마음, 측은지심은 점점 무디어지고 '개개의 지극히 이기적인 내'가 서로 편을 갈라 단죄하고 심판하는 불행의 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기에 이웃은 이런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맞다. 우리 마음이 타인을 바라보지 않을 때, 우리에게 생명의 길과 행복을 찾는 일은 실현할 수 없는 공상이 될 뿐일 테니까 말이다.

bano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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