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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촛불의 힘

지난 반세기에 가장 유명했던 촛불집회는 1988년 지금의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다. 집회의 정식 명칭도 '브라티슬라바의 촛불 데모(Candle Demonstration in Bratislava)'다. 종교적 자유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정부에 반대를 외치며 5000여명이 촛불을 들고 집회에 나섰다. 촛불을 밝히며 행진하는 시위대 주변의 시민들까지 합류하면서 규모는 커졌다. 당초 집회를 불허했던 체코슬로바키아 당국은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고 몽둥이까지 동원해 진압했지만 당시 촛불 행렬 모습은 전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결국 촛불집회로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당 일당체제가 무너지고 구스타우 후사크 대통령이 사임하면서 민주적인 정부가 수립됐다. 공산정권을 비폭력으로 무너뜨린 벨벳 혁명이다. 작은 촛불로 시작해 이룬 위대한 혁명이다. 이어 1993년에 체코슬로바키아는 평화적으로 해체돼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된다.

한국에서 집회에 본격적으로 촛불이 등장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2002년 미군장갑차에 사망한 미선-효순 추모 촛불집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 2008년 한미소고기협상 반대집회,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 집회 등이 대표적이다. 2000년 이후 촛불이 시위의 아이콘으로 등장했지만 이미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에도 촛불이 등장해 한국의 촛불집회 역사는 길다.

지난 26일 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역대 최대 규모인 190만명(경찰 추산 33만명)이 참여했다. 서울에서 150만명, 지방에서 40만명이 시위에 동참했다. 뉴욕타임스는 집회에 대해 '첫눈이 내린 추운 날씨에도 수많은 인파가 서울 중심가를 가득 채웠다'고 보도했고, 로이터 통신도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군중이 참여해 평화적인 시위를 펼쳤다'고 전했다 .



촛불시위는 민심의 표출이다.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정치권의 목소리보다 촛불을 밝혀든 국민의 마음은 더 순수하다. 폭력과 무질서를 스스로 경계하며, 함께 일어선 촛불행렬은 순수한 만큼 강력하고 준엄하다. 정파를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가를 염려하는 마음이다. 대통령은 촛불의 의미와 광장의 소리를 겸허하게 새겨야 한다.

촛불은 작은 불빛이다. 세차게 타오르지도 못하고 강렬하지도 않지만 스스로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힌다. 생명을 소진시키고 사라지는 일과성의 속성을 넘어 세상을 비춘다. 흔들려도 꺼지지 않고 바람 앞에 강해지는 것이 촛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시간 29일 제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여권에서는 '사실상 하야선언'이라고 했지만 야권은 즉각적으로 '탄핵을 면하려는 꼼수'라며 탄핵추진을 강행하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의 3차례 담화에도 아직 갈길은 멀고 촛불은 꺼질 줄 모른다.

백무산의 시에 '촛불시위'가 있다. '하나의 불꽃에서/ 수많은 불꽃이 옮겨 붙는다/ 그리고는// 누가 최초의 불꽃인지/ 누가 중심인지/ 알 수가 없다/ 알 필요가 없다/ 중심은 처음부터 무수하다// 그렇게 내 사랑도 옮겨붙고/ 산에 산에/ 꽃이 피네.'

촛불시위는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다. 주동도 없고 추종도 없다. 모두 한마음으로 동시에 일어선 작은 불꽃들이다. 어두운 세상을 밝혀려고 하나가 된 시민들의 외침이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저서 '촛불의 미학'에서 "촛불은 우리를 몽상(夢想)의 세계로 인도한다"고 했다. 하지만 촛불을 들어야만 하는 현실은 낭만적이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못하다.


김완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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