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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LA한인상의 이은 회장

수퍼카 가슴앓이…중년의 사랑에 빠지다
고1때 뉴욕 가족 이민
차 디자이너 꿈…미대 진학

96년 LA서 원단업체 창업
연매출 2천만 달러로 성장
98년부터 수퍼카 수집
30만~40만 달러짜리 5대 소유
미트 더 시티, 창업엑스포 등
신선한 상의 활동으로 주목


그는 덕후(마니아를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의 우리말 표기)다. 그것도 수퍼카 덕후다. 단지 수퍼카에 관심만 많은 것이 아닌 실제 수퍼카 컬렉터라는 걸 알고 나면 '돈이 얼마나 많길래'라는 속물적 질문부터 앞서는 게 사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가 소유하고 있는 고가의 수퍼카 목록보다는 그의 해박한 자동차 지식에 더 매료되게 된다. 게다가 중년 아재의 이토록 뜨거운 열정이라니. 자동차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 그의 눈빛은 순식간에 돌변한다. 노련한 사업가의 눈빛에서 이제 막 첫사랑에 빠진 소년의 눈빛, 바로 그것이다. 줄리엣과 사랑에 빠진 로미오의 눈빛이 이토록 절절하려나. 이 격정 로맨스의 주인공은 바로 LA한인상의 회장이며 '맨스필드 텍스타일' 이은(51) 대표다. 이 '아재 덕후'의 이야기는 꽤나 흥미진진했으며 더할 나위 없이 유쾌했다.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꾼 소년

서울이 고향인 그는 고교 1학년이던 1980년 가족이민으로 미국에 왔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시작한 고교생활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고단했다. 이민 오기 전까지 각종 미술대회를 휩쓸었던 모범생이 쌍절곤과 야구방망이를 들고 등교했다고 하니 그 '터프'했을 학교생활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어디 이민생활의 팍팍함이 마음고생뿐이었겠는가. 넉넉치 않은 집안 형편을 돕고자 방과 후엔 늘 아르바이트를 했고 11학년 때는 아예 작은 가게를 얻어 외삼촌 가구점에서 가구를 받아다 처음으로 장사라는 걸 시작했다. 이처럼 몸도 마음도 고된 이민생활이었지만 그를 버티게 해 준건 언젠가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유년시절부터의 꿈. 원하는 첫 차를 사기위해 11학년 여름방학 내내 청과상에서 하루 14시간씩 석 달을 꼬박 일했을 만큼 그의 차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남달랐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아 부친이 약속한 매칭펀드까지 받아 당시로서는 꽤 고가에 속하는 셰비 카메로 중고차를 구입했다. 이처럼 차에 대한 열정과 타고난 미술 실력으로 그는 고교시절 내내 미술반에서 활동하다 졸업 후 명문 디자인스쿨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졸업 후 그는 자동차 디자이너 대신 사업가의 길을 선택했다.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하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현실은 제가 꿈꿨던 이상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오히려 사업이 제 적성에 더 잘 맞고 재밌기도 했죠."

#사업가로 성공하다

그래서 그는 전공을 살려 뉴욕에 광고 디자인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비즈니스는 승승장구했고 2년간 적잖은 돈도 벌었다. 그러다 잘나가는 비즈니스를 접고 1992년 돌연 LA행을 선택한다.

"아름다운 날씨에 반해 언젠가는 꼭 한번 와보고 싶었어요. 무모해보이지만 젊음이 밑천이던 시절이었으니까요.(웃음)"

그러나 LA 생활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친구와 시작한 동업은 이런저런 연유로 지지부진했고 아무 연고도 없는 LA에서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했다.

"대학시절 한 친구가 그러더군요. 자동차만 마음껏 그릴 수 있다면 굶어도 좋다고. 그래서 난 돈을 많이 벌어 내가 원하는 차를 모두 사고 싶다 했죠.(웃음)"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꿈꾼 그가 지금의 원단 사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3년 지인의 권유로 LA다운타운 원단업체 세일즈맨으로 일하면서부터. 당시 영업 환경도 열악했고 업계 지식도 일천했지만 이 악물고 독학한 결과 반년도 채 안 돼 그는 업체 최고의 세일즈맨이 됐다. 원단에 대해 자신감이 생긴 그는 지인과 원단업체를 차려 독립했지만 내부문제로 얼마안가 문을 닫고 1996년 12월 가디나에 지금의 맨스필드 간판을 내 걸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아내 이미나씨와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영업을 뛰며 바닥부터 쌓은 실무경험과 타고난 사업 감각덕분에 사업은 승승장구 했고 창립 4년 만인 2000년엔 버논 시에 4만6000스퀘어피트 규모의 자체 공장과 사옥을 지어 이전할 만큼 급성장했다. 그리고 다시 10년 뒤인 2010년 맨스필드는 연매출 2000만달러가 넘는 서부지역 최고의 원단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수퍼카 덕후 성공기

그렇게 사업이 성공궤도에 오르면서 그의 꿈도 이뤄졌다. 그토록 동경했던 수퍼카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1998년 구입한 그의 첫 수퍼카는 007 영화에도 등장했던 '로터스 에스프리 트윈 터보'.

"LA 온 첫해 베벌리힐스에 있는 수퍼카 매장에 갔는데 한 판매원이 사지 않을 거면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 후 첫 수퍼카를 바로 5년이 지나 그 매장, 그 직원에게 샀죠.(웃음)"

그동안 그가 소유했던 수퍼카는 20여 대에 이르는데 지금은 람보르기니, 페라리, 포셰 등 5대를 소유하고 있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수퍼카들의 가격은 대당 30만~40만 달러선. 그렇다고 그가 단순히 소유만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작년부터 LA중앙일보에 자동차 칼럼을 기고할 정도로 자타공인 자동차 전문가이기도 하다. 또 오전 6시에 출근할 만큼 바쁜 일정 속에도 미국 내 수퍼카 소유주들의 모임인 드라이빙 클럽에도 참석해 정보도 교환하며 친목을 다진다. 그래도 수많은 덕후 중 수퍼카라니 어쩐지 위화감이 느껴진다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비싼 취미죠. 그러나 제가 정말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사는 것이고 절대 과시용으로 무리해 구입하지도 않아요.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들도 다 일시불로 구입한 것들이에요. 취미생활 하자고 빚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웃음)"

한곳에 꽂히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격은 그가 지금 맡고 있는 LA한인상의 회장 직을 수행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2008년 상의 이사로 출발, 올 6월 40대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그간 '미트 더 시티'(Meet The City), 다울정 이용 활성화, 골프대회 기금 전액 기부, 창업 엑스포 등 참신하면서도 다양한 행사를 기획, 추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정말 신나게 일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배울 점이 많은 이사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자산이죠. 덕분에 한 차원 높은 리더십을 경험할 수 있게 돼 감사할 따름입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어디쯤 이 유쾌하고 신나는 아재 덕후가 서 있다. 놀이하듯 일하며 일하듯 노는 그의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며 문득 오래된 글귀 하나가 스친다. '꿈꿔라,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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