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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여론은 쇠를 녹인다

안유회 / 논설위원

'뭇사람의 말은 쇠를 녹인다.' 요즘 말로 하면 '여론은 쇠를 녹인다'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이 나왔던 옛날에 쇠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었다. 그러니 다시 요즘 말로 바꾸면 '여론은 세상의 어떤 것도 무너뜨린다'로 바꿀 수 있다.

한국에서 최근처럼 여론이 하나의 힘으로 집결한 적도 없는 듯하다. 1인 1표가 핵심인 민주주의에서 여론이 이렇게 한 곳으로 모이기는 쉽지 않다. 촛불집회 참가 인원수 추이,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과 탄핵 찬성 여론은 하나의 점을 향해 몰려들며 갈수록 몸집이 커지는 파도처럼 압도적이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촛불집회는 링에 오른 두 선수처럼 펀치를 주고 받았다.

10월 25일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와 관련해 1분 45초에 걸친 비교적 짧은 1차 담화를 내놓았다. 최씨의 개입은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이었고 자신은 '순수한' 마음에서 이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4일 뒤인 29일 촛불은 3만 명의 시위로 대응했다.



국정농단 사례가 봇물처럼 터지자 11월 4일 2차 담화가 나왔다. 무려 9분으로 늘어난 담화는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지만 모든 것은 국가를 위해 한 일이었으며 자괴감이 든다는 것이었다. 5일 20만 명이었던 촛불은 12일 100만 명으로 커졌다. 19일 4차 집회에서 촛불은 전국으로 퍼졌다. 서울이 60만 명이었지만 지방 70여 곳에서 36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그 사이 국회는 확실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며 촛불의 요구 실행에 머뭇거렸다. 26일 촛불은 서울 150만 명, 지방 40만 명으로 불어났다. "촛불은 꺼진다"는 국회의 의구심에 경고장을 던졌다.

29일 대통령의 2차 담화가 나왔다. 키워드는 "개인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와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였다. 지난 3일 촛불은 서울 170만 명, 지방 62만 명으로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박 대통령과 촛불의 메시지는 변함이 없다. 대통령은 '사심이 없었으며' '법대로 처리하자'였고 촛불은 '탄핵'과 '퇴진'이었다. 그 사이에서 국회는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3일 촛불이 '쇠를 녹이는' 탄핵 여론의 무거움을 보여주자 국회가 무릎을 꿇었다. 이 단계에서 정치적 해법은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청와대와 국회, 검찰이 정치적 협상을 하고 타협책을 내놓기에는 서로의 입지가 벼랑끝처럼 좁다. 타협책은 여론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달아오른 여론 앞에 정치적 해결은 물을 건넜다. 지금 보이는 남은 카드는 '법대로'다. 박 대통령이 이르면 오늘 4차 대국민 담화에서 내년 4월 퇴진같은 시기를 못박는 타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런 정치적 카드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제 여론은 어떤 의사결정체처럼 움직이고 있다. 머뭇거리는 국회에는 박근핵닷컴으로 전화와 문자 폭탄을 퍼부으며 자신을 따르라고 압박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무대로 여론은 실시간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거리에 모여 이를 실행하는 거대한 유기체가 됐다. 그 앞에 대통령의 담화는 빛을 잃었다. 새누리당은 스캔들을 일단락하고 세를 보존해 다음을 기약할 타이밍마저 놓친 듯하다.

그사이 통진당 해산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가 헌법재판소와 사전에 교감을 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의무실장은 국정감사에서 대통령에게 태반·백옥·감초주사를 처방했다고 증언했다. 상황은 삼권분립까지 위협한 새로운 스캔들로 튀고 있고 기존의 주장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청와대도 국회도 어떤 해결책이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이 여론은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쇠를 녹이는 여론이 대의민주주의가 무너진 공간에서 시민 직접통치에 나서고 있다. 시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이들이 각성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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