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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썩어빠진 엘리트는 필요없다”

[조인스] 기사입력 2016/12/06 11:00

부정부패 부역으로 신뢰 잃은 엘리트
공익에 헌신하는 윤리 의식 되살려야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울화’를 요즘 종종 경험하게 된다. 대통령은 ‘임기단축’이라는 꼼수를 던져 정치권을 혼란에 빠뜨리고, 여당대표는 탄핵 발의되면 “장에 손을 지지겠다”고 했다 정작 발의되자 “내가 언제 그랬냐”고 오리발을 내밀고,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전직 민정수석은 주거불명으로 청문회 출석 요구서가 반송되고….

‘민중은 각성했다. 썩어빠진 엘리트는 필요없다’. 지난 주말 울화통 터진 시민들이 몰려든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집회에선 이런 글귀가 새겨진 대형 깃발이 높이 휘날렸다. 신묘한 재주로 달걀탑을 쌓으며(누란·累卵), ‘운명의 일주일’을 다음주 또 그 다음주로 넘기는 대통령의 꼼수는 이제 끝이 보인다. 하지만 이 깃발은 그 끝에서 시작될 ‘포스트 박근혜 시대’에 벌어질지 모를 혼란의 조짐을 강변하고 있었다.

‘지식인의 몰락’ ‘엘리트에 대한 불신’. 박근혜 게이트가 남긴 가장 깊은 상흔은 어쩌면 이 대목인지도 모른다. 이화여대 교수들이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순실 딸의 부정한 입학과 학사편의 제공에 앞장섰고, 교수 출신 청와대 경제수석은 대통령 말 한마디에 기업으로부터 돈을 뜯어내고 협박도 불사했다. 소년등과한 고시 출신 영재들은 공조직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대통령의 행동대장으로 나섰고 누구든 문제를 제기하면 조직에서 제거하는 데 앞장섰다. 알고 보니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들이 실은 생각도 영혼도 없이 악의 평범성을 실천한 ‘아이히만의 후예들’이었다는 사실. “악의 실행자가 되지 않으려면 제발 생각을 멈추지 말라”는 해나 아렌트의 경고는 깡그리 잊혀졌다는 사실 앞에 우린 할 말을 잃었다.

‘광장정치’가 대의민주주의 사회에 등장한 건 그 자체로 국가가 실패한 것이다. 국정엔 무능하면서 부정부패의 연대를 형성한 대통령과 엘리트 관료들을 의회와 사법기관은 견제하지 못했고, 일부는 그 연대를 공고히 하는 데 부역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의 부패가 드러난 후에도 사심과 탐욕 앞에서 손익을 계산하며 우유부단해지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운운하며 거래를 시도했고 광장의 힘에 떠밀려서야 탄핵 열차를 운행했다.

우리는 지식과 지성이라는 불평등한 자산을 많이 소유한 엘리트들에게 부와 권력이 쏠리는 것도 포용력 있게 용납해 왔다. 많이 배운 사람들은 사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찾고 대내외적으로 공적인 영역을 안정시켜 보통 시민들의 일상이 무탈하게 굴러가도록 애쓸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나 이런 믿음은 허무하게 배신당했다. 그렇게 우리 사회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는 무너져 갔다.

6주째 이어진 ‘주말 촛불집회’의 질서정연함은 이런 신뢰붕괴의 반작용인지도 모른다. ‘법보다 주먹’을 마다하지 않고 다혈질로는 빠지지 않는 한국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차분함. 바닥에 처박힌 국격을 회복하려는 자존심이 다혈질 한국인에게서 무서운 인내심을 끌어낸 것은 아닐까. 지금은 너무 부끄러워서 참고 또 참을 수 있다. 하나 광장의 끝에 지도층에 대한 불신과 경멸만 남는다면 우리 사회는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즈음에서 우리는 조금만 옆을 보면 엄혹했던 시절에도 “최순실이 권력서열 1위”임을 폭로했던 박관천 경정이, 검찰 외압수사를 고백했던 윤석열 검사가, 몇 차례나 문화체육관광부 인사파동이 일어났을 정도로 부정한 세력이 꺼려했던 관료들도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엘리트가 썩은 건 아니라는 위안을 받아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 우린 오래 걸려도 반드시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이루고야 마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확인하느라 이 힘든 시간을 겪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식인과 엘리트들에겐 사심과 권력이 아닌 공익에 헌신하는 윤리적 의무를 무겁게 각성하라고 주어진 시간들. 앞으로 또 생길지 모를 ‘사필귀정’의 순간에 제물로 던져질 엘리트가 다신 없길 바란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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