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68.0°

2019.09.16(Mon)

[감성 로그인] 메리 크리스마스 vs 해피 할러데이스

[LA중앙일보] 발행 2016/12/08 미주판 9면 기사입력 2016/12/07 18:18

빨간 고깔모자를 쓴 마켓 캐시어가 영수증을 봉투에 넣어주며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한다.

해브 어 굿원도 아니고 해피 할러데이스도 아니고, 이건 고전적이다 못해 아예 한국어처럼 들리는 영어 인사말, 메리 크리스마스다. 순간 햇살 같은 환한 기운이 눈꼬리에서 목덜미로 어깨로 가슴으로 퍼진다. 친근한 눈매의 히스패닉 여성이다. 나도 기분좋게 "메리 크리스마스!" 로 맞인사했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의 얘기다.

어머니가 불교신자로 교회 근처에도 안 갔지만 어린 시절 나는 매년 색연필과 물감과 반짝이를 총동원해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다. 사철 마루에서 졸고 섰던 만만한 고무나무 화분에 주렁주렁 엮어 만든 오색 테이프를 둘러치고 약솜을 뜯어 잎사귀에 올리고 금박지 은박지 오려 만든 조악한 방울을 매달곤 박수 짝짝치며 좋아라 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카드 인사말 끝에는 후렴처럼 '메리 크리스마스'가 따라붙었다. 크리스마스가 아기 예수의 생일이라지만, 나는 교회 나가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스스럼없이 크리스마스를 축하했고 즐겼고 나누었다. 산타클로스와 선물 때문일 수도 있고, 종교적인 행사의 진지함을 가벼이 넘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행복한 날이기에 좋았다. 가족과 친구와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과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기뻐하고 선물을 나누고, 그러면서 어쩐지 위태롭고 헛헛한 12월의 끝자락을 사랑과 기쁨으로 채울 수 있었기에 나는 누구에게나 주저없이 '메리 크리스마스!'를 날렸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에 주고받는 인사말을 메리 크리스마스에서 해피 할러데이스로 바꾸기 시작한 것이 1970년부터라고 하니 내가 한국에서 열심히 메리메리~를 날리던 시절에 이미 청교도 정신으로 세워진 나라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할러데이'로, 타 종교의 기념일과 기타 등등 휴일들을 아울러 '할러데이스' 로 부르고 있었던 셈이다.

여러 종교에 공평하고 '거부감을 주지 않는 정치적 정당성'이 이유다. 덕분에 나는 오히려 미국 와 살면서 '메리 크리스마스' 라는 인사말을 드물게 듣는다. 그뿐 아니라 35년 넘는 세월에도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할러데이스의 끊이지 않는 논란으로 '크리스마스 전쟁'을 치르는 미국 나라의 12월을 겪는다.

미네소타주 한 고등학교의 크리스마스 콘서트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 이슬람 라마단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거나 켄터키주의 초등학교에서는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연극을 올리면서 라이너스가 성경 속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을 없앴다는 등의 뉴스들이 이어지던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였기에 마켓 캐시어가 건넨 한마디 인사말이 특별히 힘있게, 소신있게 느껴졌다.

신앙 여부를 떠나 이미 전 세계인들의 공식적인 '휴일'이 된 크리스마스지만 비 기독교인 특히 타 종교인들에게는 불편한 날인가보다.

따지고 보면 크리스마스야말로 글로벌한 '휴일'이니 해피 할러데이스야말로 불편부당 중립적이고 적절한 인사말임에 틀림없다. 다만, 그날이 왜 1년 365일 중 하필 '할러데이'가 되었는지 그 연원을 외면한 채 이유없는 팡파레를 울린다는 점이 다를 뿐.

올해 내 인사는 "메리 크리스마스 아님 해피 할러데이스!"로 정했다. 받는 사람이 알아서 잘 받아주면 고맙겠다. 어차피 전하고 싶은 건 사랑이니까.

관련기사 감성 로그인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