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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한국의 정치가 멈춘 곳

안유회 / 논설위원

한국의 국정농단 사례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에 박근혜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 기금 모금에 청와대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음이 드러났다. 또 최순실 씨가 청와대 관저에서 문고리 3인방과 회의를 했다는 조리장의 증언도 나왔다.

비밀자료 유출 보도 이후 국정농단 사례는 일관되게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청와대의 정치는 사적 조직이 자의적으로 설정한 사설 시스템에 의해 행해졌고 법에 근거한 공적 시스템은 이를 가리거나 무마하는 역할로 전락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례들의 공통점은 '정치의 실종'이다.

사퇴와 탄핵 주장이 함성이 된 뒤에도 정치는 실종 상태였다. 청와대도 새누리당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는 정치적 결단 대신 법리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사퇴 압박에는 탄핵하라는 태도를 보였고 탄핵 뒤에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새누리당은 6차 촛불집회 이후 일부 탄핵에 동참하며 정치적으로 대응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과 국회가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 기본이 흔들리면 국민들은 직접 뜻을 관철시키겠다고 나선다. 이 뜻이 반영되지 않으면 대의민주주의는 흔들린다. 새누리당이 지난 12일 박 대통령의 징계 수위 논의에 들어간 것은 출당을 염두에 둔 정치적 행위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물러나지만 당은 새로운 대통령 후보를 내면서 정치 사이클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에서 '보수는 죽어야 산다'는 소리가 나오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사실 새누리당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살생부 40인 논란으로 시끄럽던 지난 2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 회의 배경에는 벽을 가득 채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현수막에는 유권자들의 쓴소리가 적혀 있었다. 그 가운데 정중앙에 가장 크게 적혀 있던 문구는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였다. 실제로 총선 결과는 이 거친 경고대로 됐다. 새누리당도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다만 보수의 표를 담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 했다.

최근 탄핵 정국이 시작된 이후 새누리당은 당사에 거대한 현수막을 걸었다. "국민 여러분 한없이 죄송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국정을 수습하겠습니다." 2월의 슬로건처럼 이번에도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사과(혹은 반성) 그리고 국정 수습. 키워드다.

하지만 반성과 수습의 정치적 해법까지는 아직 내놓지 못 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 당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질서있는 수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비박 39명이 비상시국위를 조직하자 친박 51명은 이에 대항해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을 출범하며 서로 당을 나가라는 거센 공격을 주고 받고 있다. 서로 당을 망쳤다며 세를 불리는 두 진영의 사활을 건 싸움을 한편에서는 당원 300여 만 명과 565억에 이르는 재산 다툼이라고 보고 있다. 이 싸움이 이른 시일 안에 정리돼 국정 수습의 정치로 넘어가지 않으면 지난 총선과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박 대통령 탄핵이 어떻게 결말 나느냐와 무관하게 벌어질 수 있다.

보수 유권자의 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지금의 그릇으로는 이를 담아내기 어렵다. 이것은 작게는 보수의 문제지만 크게는 대의민주주의의 문제다. 이번 국정농단처럼 헌법과 법률 시스템을 무시하는 방식으로는 보수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새누리당이 보수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정치의 틀 안에 잘 담아내 행정부를 견제했다면 국정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는 여기서 멈추었고 이제 다시 정치의 출발선에 서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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