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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참전군인들의 사죄

김종훈 / 야간제작팀장

지난 7일 노스다코타주에서는 신기한 광경이 벌어졌다. 수백 명의 참전군인들이 '다코다 액세스 송유관' 건설에 반대하는 스탠딩 록 원주민들 앞에서 사죄를 했다.

웨슬리 클락 2세는 이날 행사에 참가한 참전군인들을 대표해 사죄문을 발표하며 무릎을 꿇었다. 웨슬리 클락 전 4성 장군의 아들인 그는 9개월간 군경의 폭력 진압을 견디며 점거 농성을 벌여 송유관 건설 계획을 좌절시킨 원주민들에게 사죄를 구했다. 원주민들은 1851년 거주지 보호를 위해 체결한 라라미 요새조약에 근거해 송유관 건설에 반대했다.

"우리는 국가의 양심이 되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리고 양심적으로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바로 여러 해 동안 여러분에게 상처를 안긴 부대에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곳에 와 여러분과 싸웠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땅을 빼앗았습니다. 우리는 조약에 서명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신성한 언덕에서 자원을 훔쳤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신성한 산에 우리 대통령들의 얼굴을 새겼습니다. 우리가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 당신의 아이들을 빼앗고, 신이 주신 당신들의 언어를 빼앗고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존중하지 않았고 당신들의 땅을 오염시켰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방법으로 당신들에게 아픔을 줬지만 이제 사죄의 뜻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용서를 구합니다."

원주민들은 참전군인들의 뜻을 받아들이며 "세계 평화"라고 구호를 외쳤다. 원주민 '수'족의 레너스 크로 독 추장은 "땅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땅의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클락 2세 등의 사과는 파렴치와 거짓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 작은 희망을 보여줬다. 이와 같은 사죄는 지난해에도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교회가 서구의 중남미 침략 시기(16~19세기)에 원주민에게 가했던 범죄를 용서해 달라고 사죄했다. 지난해 7월 교황은 볼리비아를 방문하고 원주민 단체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의 이름으로 원주민에게 많은 중대한 죄를 저질렀다. 식민 시대에 가톨릭교회가 저지른 죄, 그리고 이른바 '아메리카 정복'의 이름으로 원주민에게 가해진 모든 죄에 겸허한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 관할권을 갖고 있는 육군은 지난 5일 원주민들의 식수원 부근을 지나는 송유관 건설 승인을 취소했다. 육군 측은 송유관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재검토해 다른 경로를 찾겠다고 밝혔다. 마치 한국의 촛불행진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 냈듯이 원주민들과 양심적인 미국인들의 저항 덕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체포되고 수십여 명이 물 대포 등의 공격을 받아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다. 내년 집권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 이미 공화당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승인 취소가 "정부가 내린 최악의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에너지 정책 고문인 케빈 크래머 하원의원(공화.노스다코타)도 "다음달 법과 질서를 우롱하지 않을 대통령이 취임하면 법 질서 복구에 동참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사람보다 돈, 자연보다 대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추악한 모습이다.

한국에서는 사죄할 줄을 모르는 추악한 정치인들을 국민들이 끌어 내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내년에 사죄와 거리가 먼 정권이 들어선다. 한국 국민들은 4년 전 뽑은 대통령에 대해 이제야 잘못을 깨닫고 돌아섰다. 미국 국민들이 잘못을 깨달을 날은 언제일까? 아직 취임도 하지 않았지만 벌써 실망감이 역력하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고위 공직자 인선을 지지하는 비율은 40%에 그쳤다. 억만장자와 초강경 극우 보수파 일색으로 각료들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임기 동안 또다시 이후에 사죄를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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