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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애교 같은 거짓말

천양곡 신경정신과 전문의

집 거실에는 꽤 커다란 코끼리 석고상이 놓여 있었다. 33년 전 환자에게 받은 선물이기에 여러 번의 이사를 거쳤지만 꼭 가지고 다녔다. 지구촌을 떠나기 전 환자한테 물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어린 손자가 그만 코끼리를 부숴버리고 말았다. "어머어떻게 하죠!" 애미인 딸 애가 미안해 어쩔 줄 모른다. "아냐 괜찮아 아무 것도 아닌데 뭘." 물론 거짓말이다.

인류가 창조된 이래 거짓말은 쉬지 않고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부모.선생.성직자들에게 거짓말 말라고 배웠지만 현실과 부딪치면 그게 안된다. 사람들은 하루 평균 한 두번 대학생들은 부모와 대화할 때 두 마디 중 한 마디는 거짓말을 한다. 어느 사회집단은 거짓말을 격려하고 상 주려는 경향도 있다. 직업 포커 선수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게 무언의 거짓말인 표정관리 선거유세 중 정치가가 내세우는 거짓 공약 의뢰인에게 암시적 거짓말을 유도하는 변호사의 행동은 사회적으로 용납되고 있다.

거짓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당한 거짓말은 서로 봐주며 넘어가는 게 인간 상호관계에 기초를 둔 사회생활 중 하나의 지혜다. 데이트 시간에 늦은 남자가 헐레벌떡 들어오며 "차가 막혀 미안하게 됐습니다"라고 하면 여자는 그 말을 믿진 않지만 대개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남자 또한 여자가 자기 말을 안믿는지 알지만 더 이상의 변명은 피한다.

사회학자 고프만 박사는 "우리 생활 속에 빈번히 일어나는 조그만 속임수는 평화롭고 안정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병적 행동이 아니므로 현대사회는 애교로 받아준다"고 했다. 그러나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불이익을 초래하는 거짓말은 해서는 안되겠다. 지난 25년간 주립병원 응급실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없는 정신병을 제조하거나 가벼운 정신증상을 크게 불려 호소하는 거짓말장이 환자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들은 감옥이 싫어 정신병자를 가장하는 범죄자나 군대와 직장에 복귀하기가 무서워 자살을 위장하는 자 또는 길거리 대신 따뜻한 잠자리와 음식이 보장된 병원에 묵고 싶은 부랑자였다.



거짓말이 의심되는 환자를 대할 땐 궁지에 몰리는 느낌이다. 정면대응으로 골치를 썩힐 건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그의 요구대로 진단해줄 것인가를 제한된 시간에 결정해야 한다. 그들은 의사와 오래 이야기 하면 들통이 날까봐 동문서답식으로 협조를 않는 게 보통이다.

그런 이유로 병아리 정신과 의사 시절에는 이들이 의사를 이용해 실리를 챙기련다는 생각이 들어 환자를 원칙대로만 처리했다. 경험이 붙고 나이가 들면서 화를 내는 대신 인간이 기본적 존엄성을 지켜주는 방향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했다. 증상을 불려 말하는 일부 환자들은 정신병에 대한 보상이나 이익을 확인하려고 끈질기게 입원을 요구한다. 우리가 남한테 의지하려는 욕망을 아픔으로 표현한다는 정신분석 학자들의 설명이다.

그들은 입원을 거절당하면 자신의 이익을 빼앗아간 의사를 도둑으로 잘못 생각해 엉뚱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응급실에서 근무하며 입원시키지 않았던 환자들로 부터 고소하겠다느니 타이어를 펑크 낸다느니 길조심 하라느니 등 심심치 않게 협박(?)을 당했다. 그러나 아무 일 없이 몇년 전 응급실 정신과 의사를 그만두었다. 필자가 잘 했다기 보다 어깨 위에서 지켜준 수호천사 코끼리 덕분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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