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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 안중에 없어야 "살 수 있다"

LA한인타운 노숙자 인터뷰
여성 노숙자 화장실·생리 이중고

노숙자에게도 크리스마스는 기다려지는 하루일까. 어쩌면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도 모를 질문을 던졌다.

"만약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무슨 선물을 하고 싶어요?"

노숙자의 상당수가 이 질문에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대부분이 가족이나 친구도 없고 또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기 때문이다. '만약'이라는 전제를 붙였는데도 이 질문에 그들의 머릿속은 멍해지는 듯 싶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배 고프다"



38세의 김홍석씨는 윌튼과 올림픽길 코너에 있는 작은 공원에 살고 있다. 공원에 있는 운동기구는 그의 살림살이다. 철봉은 옷걸이고 벤치프레스용 긴 의자는 그의 침대다. 인사를 하자 그가 수줍은 듯 배시시 웃는다. 그와의 대화는 힘들다. 10가지 질문을 던지면 돌아오는 답은 많아야 1~2개다. 게다가 단답형이다. 그와의 대화에서 들을 수 있었던 얘기는 젊은 시절 마약을 했고 가족과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느냐고 물었다. 한참 만에 답이 돌아왔다. "햄버거…". 마흔살이 가까운 그가 갖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먹을 거다. 눈빛은 절박했다. 진짜 갖고 싶은 선물이었다. 거리의 허기는 간절했다.

19년차 여성 노숙자

라일라는 노숙생활 19년차다. 40세에 거리생활 시작해 58세가 됐다. 그의 중년의 삶은 거리에서 시작돼 거리에서 끝난 셈이다.

그녀는 요즘 노숙자들이 흔하게 가진 텐트 하나 없다. 대신 이사를 하듯 차곡차곡 잘 정돈해 놓은 카트 하나와 접이용 야외 의자가 전부다. 19년의 노숙생활에 비하면 단출한 편이다.

라일라는 오랜 노숙생활에서 오는 그만의 규칙이 있다. 결코 주변을 더럽히지 않는다. 음식을 먹고나면 음식 쓰레기는 모두 모아 한 블럭 떨어진 대형 쓰레기 통까지 걸어가서 버린다. 그래서 주변에는 떨어진 휴지 한 조각이 없다.

노숙생활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화장실이다. 하지만 그 또한 라일라에게는 큰 문제가 아닌 듯 보였다. 인터뷰 도중 화장실을 가야겠다던 그녀는 비닐봉투와 신문지 그리고 생리대를 하나 꺼내들고 카트 뒤로 갔다. '설마…'하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쪼그려 앉는다. 민망한 마음에 뒤를 돌아 혹시나 지나가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의도치 않게 망을 봤다.

그에게 사람들의 시선은 안중에 없는 듯했다. "타인의 시선은 안중에 없어야 살 수 있다." 수치심 같은 것은 노숙생활에서 사치였다. 여성 노숙자들에게 화장실 문제는 셸터에 머물지 않는 이상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히는 과제다. 거리에서 공공화장실을 찾기도 힘들 뿐더러 카페나 상점들이 쉽사리 그들에게 화장실을 내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소화한 잔해를 처리하는 것도 문제다. 실존의 가벼움.

게다가 여성노숙자들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생리문제다.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여성노숙자들이 노숙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생리문제를 꼽았다. 보호소 등에서 생활을 한다 해도 생리대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후원을 받기 힘들다. 생리기간 제대로 씻지 않으면 질병에 걸릴 확률도 높다.

라일라는 그렇게 일을 마친 뒤 휴지들을 잘 싸서 다시 한 블럭 떨어진 휴지통에 버리고 왔다. 19년 동안 그렇게 같은 하루를 살아서 일까. 그는 "크리스마스도 또 하나의 (평범한) 하루일 뿐"이라고 말했다.

라일라가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거리에서의 삶이 힘겨워." 하지만 그녀에게 어떤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자존심 있는 노숙자

3가와 버질 애비뉴에 1년째 노숙 중인 인도계 50대 남성. 해피 빌리지 '사랑의 점퍼와 라면'을 핑계로 대화를 건네자 콧방귀를 뀐다.

"나는 알래스카서 온 영주권자야. 저쪽 주차장 입구에서 5년 살았는데 그쪽 사람들이 경찰을 하도 불러서 중국총영사관 앞으로 이사했어. 여기선 누구도 나를 간섭하지 않아. 검은색 점퍼… 싫어 안 받을래. (그는 인도 잔디밭 천막집 흰색을 가리키며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강조했다) 라면도 나는 안 먹어. 노숙자 취재를 원하면 나는 이야기하지 않을래. 그만 가줬으면 좋겠어."

지독한 가난은 자존심을 갉아먹지만 그는 달랐다.

"나는 사람을 믿지 않아"

지난 16일 오전 7시30분 윌셔와 샤토 플레이스 LA한인타운 최고급 주상복합 고층빌딩. 밤새 내린 비를 피하려 한 흑인 남성(51)이 1층 AT&T입구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몸을 움직인다. 남루한 옷차림에 반쯤 젖은 옷가지, 그 모습이 안쓰러워 점퍼 하나를 건넸지만 차마 시선을 고정할 수 없었다.

다행히 비가 그치자 그는 활기를 되찾았다. 인근 노숙자 촌으로 카트를 움직인 그, 이날 새벽 4시부터 한인타운을 돌며 캔과 플라스틱병을 주웠단다. 그 자리에서 캔과 플라스틱을 분리했다.

"나는 재활용하는 남자야. 누구도 내게 관심을 두지 않지만 괜찮아. 나는 사람을 믿지 않아. 다들 내게서 무언가를 뺏어가려고 하거든."

그는 지난 20년 동안 살아남기 위해 넝마주이 삶을 살았다고 전했다. "이거는 '빅 비즈니스'"라며 하루 5달러는 번단다. 주어와 동사가 서로 엇갈리는 횡설수설도 섞였지만,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체득한 삶이었다. "경찰은 만날 나보고 꺼지라고 해. 나는 그들이 싫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오수연·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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