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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양날의 칼

천양곡 신경정신과 전문의

"그 나이에 골프나 치지 무슨 글이냐"는 소리를 듣는다. 그냥 가벼운 미소로 답하지만 머리 속에 널려진 단어들을 뽑아 생각에 살을 붙여 글 쓰는 재미 또한 골프 못지 않다. 가끔 좋은 글이 나올 때면 산모의 기쁨이랄까. 그런 만족감도 느껴본다.

문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꾸준한 노력과 수양이다. 내 경우엔 조용히 숨어있는 또 하나의 재능과 새로운 자아를 찾을 기회를 주었고 환자의 언행을 더 주목하고 관찰하는 태도도 올려주었다. 그래서 보다 성숙한 정신과 의사가 되어가는 하나의 길잡이란 생각도 든다.

버지니아텍의 조승희씨 참사가 일어난 며칠 후 중앙일보에서 글 하나 적어보내라는 부탁이 왔다. 프로 아닌 칵테일 아마추어 칼럼니스트라 한편으론 영광스럽고 걱정이 됐지만 밤잠을 줄이며 책임을 완수한 일도 있었다.

"I am a writer(나는 작가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환자가 던진 말이었다.



여기 온 게 잘못 같다며 멀쩡한 자기를 데려온 아내에 대한 불평만 했다. 그는 성품이 명랑하고 사교적이라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가 40대 중반에 들어서자 직업에 대한 애착이 줄어들며 무엇인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어느 날 밤 잠결에 "일어나라 너는 미래의 '톨스토이에프스키'이니라"는 은은한 음성이 들렸다. 신이 자기한테 준 메시지 즉 'God's Calling'을 받은 걸로 믿었다.

그 날로 직장을 떠나 글 쓰는 일에 몰두했다. 두어시간 밖에 자지 않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은커녕 힘이 넘쳐났다. 머리 속엔 온갖 새로운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 있어 다른 사람들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의 사고방식과 틀린 사람과는 자주 다투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중년 인생위기를 앓고 있는거라 참았지만 점점 이상한 행동 때문에 정신과 의사를 찾았던 것이다.

그의 양극성 장애(조울증)는 약물치료로 많이 좋아졌으나 미래의 '톨스토이에프스키'란 신의 계시는 망상으로 변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Writer's Digest' 등 유명잡지사 뿐 아니라 사이버 인터넷에서 주최하는 작품 콘테스트에 매번 나간다. 참가비조로 적지 않은 돈을 소비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한 번도 그의 글이 나온 적이 없다. 그래도 신의 계시가 있다는 생각에 계속 글을 쓰고 있다.

필자와 가족관계가 있는 분도 명문대인 예일대 재학중 'God's Calling'을 받았다고 했다. 석유사업을 하는 집안의 장남으로 아버지 뒤를 이을 계획을 버리고 성직자의 길을 택했다. 그는 자비를 들여 큰 성전을 짓고 신도들도 돌보고 있다.

종교적 신앙체험과 정신질환 사이에 확실한 경계선을 긋기가 힘들다. 앞의 두 사람 경우는 비교적 설명이 쉽지만 많은 케이스에서 확실한 진단이 힘들다.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사회ㆍ정치ㆍ윤리관 등이 특정한 종교문화권의 영향 때문이란 주장도 있다.

우리 주위에 신의 계시와 부름을 받았다는 분들이 계신다. 그 분들의 종교적ㆍ성령적 체험을 받는 사실은 의심 않지만 상식에 어긋난 행동은 정신증상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신의 Calling'은 양날이 선 검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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