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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씨위' 크리스 박 대표

"내 개인 재산 늘리려 하면 회사가 힘들어지죠"
21세 때 중고밴 몰고
스왑밋 좌판부터 시작

적자 업체 '씨위' 인수
1년새 매출 2배로 키워
5년만에 연매출 1600만불
공격경영으로 불황 타개
"개인 재산 불리기보다
행복한 일터 만들고파"


참 억척스러운 여장부라는 생각의 이면, 사업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순진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도 함께 스쳤다. 그러니까 이 글은 어느 사업가의 성공스토리가 아닌 이제 막 지천명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 한 인간의 조금은 남다른 인생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프리미엄 데님 브랜드 '씨위'(Siwy) 크리스 박(56)대표다. 연 매출 1600만 달러의 사업체를 이끌고 있는 한 여장부의 특별한 성공 비결 들어보려 마주 앉았다 어느새 그녀의 삶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싱글맘으로 7전8기 오뚝이 같은 인생을 살아온 그녀의 삶은 도전과 헌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크리스 박 대표를 LA다운타운 씨위 쇼룸에서 만나봤다.

#스물 아가씨의 성공 도전기

1남4녀 중 맏딸인 그녀는 숭실대 영문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2년 가족이민으로 LA에 왔다. 이민 후 LA한인타운 한 광고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그리고 주말이면 중고 밴 하나 구입해 아웃도어 스왑밋을 돌며 좌판에서 옷가지들을 팔았다. 장사 수완도 좋았고 무엇보다 고객들 '취향저격' 제대로 한 결과 매번 완판을 기록했다.



당시 하루 매상이 800달러를 넘기자 1984년 그녀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스왑밋 장사에 전력투구했다. 주 6일 LA일대는 물론 팜스프링, 새크라멘토까지 스왑밋이 있는 곳이라면 거리불문 밴을 몰고 달려갔다. 이렇게 장사에 이력이 붙자 물건을 떼다 파는 것뿐 아니라 아예 봉제공장에 직접 제작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제작한 의류들은 다른 가게에서도 앞 다퉈 주문이 들어올 만큼 히트를 쳤다. 덕분에 뜨내기장사를 벗어나 슬로슨, 캄튼, 잉글우드 등 인도어 스왑밋 3곳에 상설 매장을 오픈하게 됐고 매출도 껑충 뛰어 크리스마스 같은 성수기엔 하루 매출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리고 1987년 결혼과 동시에 당시 남편이 운영하던 봉제공장 비즈니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회사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녀에게 시련이 찾아 왔다. 1993년 이혼과 함께 맨손이 된 것이다.

"빈털터리가 됐지만 자신 있었어요. 사업은 또 시작하면 되고 시작하면 성공할 자신이 있었거든요."

#7전8기 성공신화

그녀의 이 근거 있는 자신감은 곧 증명 됐다. 남의 봉제공장에서 3개월간 매니저로 일하며 바닥부터 다시 시작한 그녀는 얼마 안가 자신의 공장을 차릴 수 있게 됐고 2년도 채 안 돼 샌피드로에 2만스퀘어피트 규모의 공장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다시 사업은 번창했다. 그러나 그렇게 잘 나가던 사업은 2001년 9·11 테러가 터지면서 이곳저곳에서 밀려드는 주문 취소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직원들 월급만큼은 밀리지 않으려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려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리다보니 순식간에 빚더미에 앉았다. 사업을 시작한 이래 최대의 고비였다.

"저를 믿고 돈을 빌려준 이들인데 하루라도 빨리 돈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이 악물고 살았죠. 당시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아이들 붙잡고 울기도 참 많이 울었어요."

순간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큰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른다. 바로 그 순간만큼은 열 장정 부럽지 않은 여장부가 아닌 어린 자식들 고생이 그저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미안하고 또 미안한 평범한 엄마의 모습만이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악착같이 일한 결과 3년 반 뒤 그녀는 모든 빚을 청산했고 회사는 다시 정상궤도에 올랐다. 그러면서 오래 전부터 그녀의 꿈이었던 자신만의 데님 브랜드를 시작했다. 이미 95년과 97년 두 차례나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었지만 2008년 그녀의 고객이기도 했던, 적자에 허덕이던 '씨위'를 인수한 것이다.

"적자 회사였지만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입어 브랜드 인지도 만큼은 확실해 경영만 잘하면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죠."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인수 1년 뒤 매출은 2배로 껑충 뛰어 올랐고 2013년 연매출 1600만,달러를 기록하며 프리미엄 진 업계 신흥강자로 떠올랐다.

"지금 자바 경기가 다 안 좋아요. 우리도 거기서 자유로울 순 없죠. 이럴 때일수록 공격적으로 경영해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남들 다 돈 쓸 때 돈 쓰면 티 안 나지만 경기가 얼어붙었을 땐 조금만 투자를 해도 효과는 금방 나타나는 법이거든요."

그래서 그녀는 유명 백화점 판로 개척을 위해 최근 백화점 전문 영업통을 스카우트하기도 했고 경기 침체로 문을 닫았던 뉴욕 지사도 다시 오픈했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그녀는 회사에서 '마마'로 통한다. 예전에는 직원들이 부부싸움만 해도 그녀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할 정도였단다. 그러다보니 가정폭력으로 철창신세 지는 직원들을 보석으로 빼내오기도 부지기수. 아무리 그래도 한두 푼도 아닌 보석금을 선뜻 내놓기란 쉽지 않았을 터.

"나중에 꼭 갚으라고 하죠. 그러면 월급타서 50불씩도 갚고 100불씩도 갚아요. 그 돈 떼먹은 이들 거의 없어요. 아 그러고 보니 떼먹힌 적도 있긴 하네요.(웃음)"

이제야 생각난 듯 돈 떼먹힌 이야기에 속없어 보이는 웃음이라니. 그러나 그 웃음 속 그녀의 진심이 반짝였다.

"회사가 아무리 힘들어도 레이오프 한 적은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없어요. 제가 한창 힘들 때 500달러, 1000달러씩 들고 와 회사에 보태라고 한 이들인데 어떻게 그 마음을 잊을 수 있겠어요."

이처럼 '오는 정, 가는 정'이 쌓이다보니 총 직원 80명 중 20년 넘게 일한 직원들이 절반이 넘고 30년 넘는 세월동안 봉제공장 운영에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는 종업원 상해보험 클레임 한번 받아 본 적이 없다.

"회사 수익 대부분은 재투자해요. 그러다보니 제 소유의 집 한 채가 없네요.(웃음) 앞으로도 제 개인재산을 늘리는 데 힘쓰고 싶진 않아요. 그러면 회사가 힘들어 졌을 때 분명 직원 월급이나 회사보다는 제 개인재산 지키느라 급급할 텐데 그렇게 사업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개인 은행잔고만 놓고 보면 성공했다 말 할 수 없겠지만 성공의 기준이 행복이라면 전 분명 성공한 사람입니다."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고.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 진다고. 그녀가 그녀의 인생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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