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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이젠 내가 갚을 차례지요

모니카 류 카이저 병원 암 전문의

"어떻게 하루를 보내십니까?" "밖에 산책도 나가고 앉아서 TV도 보면서 지냅니다." "걷기 힘드신데 어떻게 산책을 하세요?" "남편이 휠체어에 나를 태우고 나가곤 합니다. 햇빛을 받으라고요."

"그렇군요. 그러면 집안일은 어느 정도 하시나요?"

"거의 하지 못해요." "그러면 누가 식사를 만듭니까?"

암에 걸려 치료를 받는 중년 여자 환자는 함께 온 남편에게 얼굴을 돌렸다.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이제는 제 차례랍니다. 아내가 일생 해 온 일을 이젠 제가 갚을 때이지요."

이런 부부가 있나 하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한국 여자 환자가 있다. 그 여인은 나와 진료 약속 없이 홀연히 내 오피스에 나타났다. 나의 바쁜 스케줄에 낙하산 타고 내려와 나를 보러 왔으니 복잡해진 간호사의 준비과정에 문제가 많았을 것은 상상이 갈 것이다. 내가 한국의사라고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병이 중하다는 것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듯 처음에는 남의 일 보듯 하던 여인은 유방암 진단 이후 수술을 받을 때도 약물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에도 늘 혼자 왔다.

언제나 깔끔하게 화장도 하고 빠진 머리를 스카프로 예쁘게 동이고 통원치료를 받던 그녀의 성품은 활달했다. 어느 날 어떻게 늘 혼자 오느냐고 물으니 "그 사람은 너무 잘나서요…." 하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 여인의 남편을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채 그 환자의 종말을 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한인 노인이 있다. 그 어른의 아내는 10년도 전에 뇌출혈로 몸의 일부가 마비되어 양노원에 계신다. 이 어른은 매일 양로원에 출근하신다. 깨끗하고 성실한 삶 사랑의 믿음을 몸으로 실천해서 그런지 외모가 핸섬하고 평화로와보이기 까지 한다.

이혼을 한 사이인데도 이혼 전 남편이 또는 이혼 전의 아내가 암치료를 받을 때 함께 해 주는 경우도 보았다. 한인 정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일 것이다.

우리는 암에 걸린 경우 특히 여성이 암에 걸렸을 때 이혼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잘 안다. 이 사실은 의학 잡지에 보도 된 바 있다. 이러한 인간들의 다양한 '인간관계'를 생각해 볼 때 누구를 사랑 할 수 있다는 것과 사랑을 행위로 펼 수 있는 지혜와 용기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사랑한다는 것은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닌 하나의 '신비'라고 말하는 나를 보고 웃을 사람들이 많이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의무로 묶여진 사이 어떤 목적에 의해 맺어진 사이는 불행이 닥칠 때나 몸에 심한 이상이 와서 24시간 간병을 필요로 할 때 그 치다꺼리가 힘들고 고달플 수밖에 없다. 물론 의무로 묶여진 사이의 징검다리가 사랑의 무지개를 만들게 된다면 그것 또한 기적이며 '사랑의 신비'에 속하게 될 것이지만 말이다.

환자들이 가정 안에서 뒤바뀐 역할 때문에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바뀐 역할을 못해내서 어려움을 불행으로 밀고 가는 집안을 보며 여자와 남자의 일이 엄격히 구분됐거나 보이지 않는 상하의 관계가 금이 그어져 있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 벽을 사랑으로 밖에는 깰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고 삶의 특권(privilege)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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