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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긍정, 뉴욕의 정신 담았어요"

수천대 1 치열한 경쟁 뚫고
10년에 걸친 대장정 마무리
뉴욕의 어제.오늘.내일 표현

"10년을 공들인 자식 같은 작품이 설치된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저도 오늘이 처음이에요. 벽에 새긴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아요. 그런데 보세요. 여기 벽에 담긴 인물들이 지금 전철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참 많이 닮지 않았나요? 바쁜 일상 속에서도 희망과 긍정을 잃지 않는 강인한 뉴욕 사람들. 제 작품은 이들에게 드리는 새해 선물이에요. 해피 뉴이어!"

목소리에서 긍정의 힘이 넘쳤다. 작은 체구임에도 이 거대한 면적의 지하 벽면을 혼자 채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왔을지 느껴졌다. 10년에 걸친 공사 끝에 2017년 새해 첫날 베일을 벗은 맨해튼 2애비뉴 전철 1단계 구간. 이곳 벽면에 작품을 올린 설치작가 진 신(한국이름 신정은.45)씨다. 한인 아티스트가 맨해튼 전철역에 이름을 새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무심코 지나쳤을 수도 있겠지만 신씨는 지난 2008년 플러싱에 있는 롱아일랜드레일로드(LIRR) 브로드웨이역 벽면에 청자 조각을 활용한 한국적 작품을 새긴 주인공이기도 하다. LIRR역 작품에는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반영했다면 이번 전철역 작품에는 뉴욕의 정체성을 담았다.

"8마일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 새로운 교통 시대를 열겠다는 강인함과 확고한 의지, 그리고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에 찬 긍정. 이 모두가 바로 뉴욕의 정신이라 할 수 있어요. 뉴욕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희망으로 가는 뉴욕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모습을 담은 게 이번 작품이에요." 그래서 신씨의 이번 작품명은 '희망을 따라 위로 향하는'의 의미를 담은 '엘리베이티드(Elevated)'다.

신씨의 작품은 Q.F노선이 지나는 렉싱턴애비뉴 63스트리트역에 설치됐다. 평일 20만 명 이상의 통근자들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신씨의 작품들은 역 출입구와 라운지 공간(메자닌), 플랫폼 총 세 부분으로 나뉘어 설치됐다.



역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지나는 거대한 벽면에는 도자기 타일을 활용해 붉은 갈색의 철근 구조를 초현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다. 이어 메트로카드 창구가 있는 메자닌 벽면에는 과거 1940~60년대 뉴욕시를 연상시키는 복고풍 뉴요커들의 모습을 담은 유리 조각 작품이 설치돼 있다. 인물들은 흑백인 반면 파랗게 펼쳐지는 하늘이 배경으로 있어 현재를 사는 일반 통근자들의 모습이 살아나는 것 같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면 역시 과거 뉴욕의 건물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으면서도 재료와 색감을 변형해 뉴욕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초현실적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63스트리트역은 상징성이 가장 큰 곳이예요. 지난 2007년 처음 2애비뉴 전철 확장 작업이 발표됐을 때 1단계 구간 작업을 위해 땅굴을 파기 시작한 곳이 63스트리트역이에요. 그런 점에서 이곳은 새 시대를 열겠다는 '약속의 장소'이기도 해요. 한 번 약속한 대로 오랜 시간이 걸려도 완성해내겠다는 의지와 강인함이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죠."

신씨는 수천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됐다. 구상 과정을 제외하고 벽면을 둘러싼 수천 개의 도자기.유리 타일 제작 기간만 5년이 넘게 걸렸다. 신씨는 "작품에 담긴 인물들 중에 가장 아끼는 캐릭터는 유일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젊은 남성이예요. 전철을 타고 첫 출근길에 나선 사회 초년생 같은 표정이에요. 긴장감과 비장함, 견고함과 자신감의 눈빛을 띄고 있는데 이곳을 지나는 통근자 모두에게 힘이 되는 캐릭터가 아닐까 싶어요."

사회 초년생 캐릭터는 마치 신씨가 처음 뉴욕에 왔을 때 같았다. 6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와 매릴랜드주에서 자라난 신씨에게 뉴욕은 아티스트로서 꿈꾸고 싶은 도시였다. 브루클린에 있는 프랫인스티튜트로 입학하며 예술 학도로서 뉴욕에 처음 입성하며 느꼈던 감정들이 신씨의 이번 작품에도 묻어났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신씨는 뉴욕현대미술관과 스미스소니언뮤지엄 등 내로라하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공공예술 작업에 집중하는 아티스트가 됐다.

"뉴욕주의 표어는 '더욱 더 높이(Excelsior)'예요. 그리고 미국의 건국 이념은 라틴어로 '여럿이 모여 하나'라는 의미의 '플루리부스 우눔(E Pluribus Unum)'이고요.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전 세계 곳곳에서 모여 희망을 찾아가는 강인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뉴욕이죠. 매일 아침 저녁 출퇴근길 제 작품을 문득 보고 잠시 잊고 있었던 우리의 강인함과 긍정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으면 해요. 작품에 우리 모두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결국 이번 전철역 작품은 모두가 함께 해낸 것이예요. 어제의 어둠을 뚫고 내일의 하늘을 여는 우리의 모습이니깐요."


이조은 기자
lee.joe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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