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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꼬~끼요~!

박재욱 법사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이육사의 '광야' 중)마는, 용마루 딛고 선 장닭의 호흡은 아득히 여명을 울린다.

동녘아래서 아침놀을 붉게 뿜어내며 연신 이글대든 태양이, 이윽고 닭 볏 같은 진홍빛으로 불쑥 솟아올랐다. 신령한 빛과 기운이 넘실대며 온 누리로 퍼져나간다. 2017년 새 하늘이 열린 것이다.

올해 정유년(丁酉年)은 '붉은 닭의 해'이다.

붉은 장닭의 볏은 강렬한 감정과 열정을, 번뜩이는 눈빛과 예리한 부리는 가차 없는 공격성을, 곧추세운 윤기 자르르한 목은 강한 자기주장과 고집스러운 면을 드러낸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화려한 색의 조화로 한껏 멋을 부리며, 억센 두발과 날카로운 발톱으로 땅을 움켜쥐듯 힘주어 내딛는 걸음마다, 위풍당당한 존재감과 굳세고 강인한 생명력을 드러낸다.



이로 미루어, 올해는 일 퍼센트 부족한 '닭대가리'들이 패악을 떨어 재수 옴 붙거나 집안 망할 일은 없겠다. 생기 넘치는 역동적인 한해를 기대해도 좋을 성 싶다.

닭의 일반적 이미지로서, 장닭은 용맹과 헌신, 암탉은 모성애가 느껴지는 포근함과 부지런함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전통적인 상징의미로, 새벽을 알리는 장닭의 힘차고 옹골찬 울음소리는, 어둠 속에서 빛의 도래를 알린다는 뜻에서 흔히 개벽, 깨달음, 위인의 탄생 등을 의미하며, 잠든 만물의 생기를 일깨운다는 면에서는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닭이 울고 동이 트면 잡귀가 달아나기 때문에, 고래로 액운을 물리쳐주는 영물로 치부하였다.

그래서 장닭을 달리 촉야(燭夜)라 불렀다. 물리적으로는 새벽을 열어 어둠을 밝힌다는 뜻이지만, 불가에서 촉야의 함의는 '어둠(무명)을 밝히는 지혜의 등불'이다.

'지혜의 등불'은 부처님의 유훈으로 알려진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에서 유래했다.

지난 2016년 5월14일, 불기 2560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은 '저와 정부는 자등명 법등명의 부처님 가르침처럼 오직 국민을 등불삼아 국민행복과 안전을 지켜낼 것이며…'라고 말했다. 참으로 나랏말과 글이 이렇게 엉뚱하게 놀기도 희한한 일이다.

부처님의 유훈은 '모든 것은 무상하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정진하라'에 이어, '너희들은 저마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라. 또한 법(진리)을 등불로 삼아 법을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이다. 원래는 등불이 아니라, '섬'이라고 한다. 생사고해를 건너는 중생들에게 섬(법)은 좋은 피난처요,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다.

꼬~끼요~! 지혜의 등불로 살펴, 어둔 구석구석을 달래고 용서하자. 그래서 따뜻하고 드맑은 마음의 등불을 밝혀, 안팎으로 살림살이를 잘 일구어야겠다.

먼데 산등을 따라 오마지 않은 함박송이 드문 눈이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고은 시집 '순간의 꽃' 중에서)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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