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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라마단과 아랍계 환자

천양곡 신경정신과 전문의

익어가는 곡식 살찌는 말들이 널려 있는 들판의 풍요로움과 빨갛게 물들어 가는 나뭇잎들이 스산한 바람결에 떨어지는 생의 무상함이 뒤섞인 가을이다. 이런 센티멘털 감정을 접어두고 나는 먼저 걱정할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

추운 날씨에 해가 짧아지면 증세가 심해지는 우울증 환자들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 환자들이 이에 속한다.

이슬람교의 가장 성스러운 달은 연중 9번째인 9월이다. 이슬람 신도들이 9월 하순이 되면 거의 한 달 동안 단식하는 종교적 의식이 라마단이다. 그들은 해가 뜬 아침부터 저녁 노을에 어두워질 때까지 음식은 물론 물도 전연 입에 대지 않는다.

그 기간에 신도들은 알라신을 위해 하루 몇번씩 기도로 경외하며 자신을 훈련시키는 계기로 삼는다. 또한 가난 때문에 굶주리는 사람들의 고통을 음미하며 남을 위해 봉사와 희생을 실천하는 박애정신을 키운다.



미국 이민자들은 말이 짧아 무슨 일이 생기면 같은 동족의 전문가를 찾기 마련이다. 특히 2001년 9월11일 사건 이후 아랍계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굳게 뭉쳐 정신질환을 가진 친척이나 친구들을 타 종교 정신과 의사한테 보내지 않고 있다.

우리 클리닉에도 대부분의 아랍계 환자들이 떠났다. 오랫 동안 치료 받아온 몇몇의 아랍인 환자들만이 있을 뿐이다.

몇 년 동안 계속되는 이라크 전쟁 중 사망한 아랍계 민간인 수가 거의 100만 명에 가깝다. 이라크 국민들은 전쟁 초기의 폭격과 끊일줄 모르는 싸움으로 식수ㆍ전기부족을 초래해 고생이 심하다. 자연히 미국을 향한 원망과 원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니 하루 빨리 이라크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알라신과의 싸움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일지도 모른다. 정신병을 치료할 때 환자를 둘러싼 문화ㆍ풍습ㆍ종교ㆍ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꼭 물어보아야 한다. 이 문제를 잘못 다루면 환자의 회복을 늦추거나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우리 클리닉 환자들은 종교심이 강해서인지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압력 때문인지 라마단 시즌이 오면 어김없이 단식을 시작한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하마드 선지자는 서기 7세기 경 알라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코란 성서를 기술했다. 코란에 '단식이 신도들에게 해가 되면 그만 두어도 괜찮다'는 조항이 있다 해도 환자들은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

금년에도 단식하는 환자들에겐 약도 하루 한 번 저녁식사 후에 먹게 하고 되도록 충분한 물과 음식을 들도록 권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아 환자들은 저녁에도 소량의 물과 음식으로 버티는 가족들과 행동을 같이 한다. 한 달 동안의 충분치 못한 수분과 적은 칼로리 섭취는 신체 모든 장기의 기능에 영향을 주므로 정신과 약의 용량을 줄이고 상태를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대부분의 정신과 약은 입맛을 돋우고 단 음식에 대한 동경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가뜩이나 배가 고플텐데 먹는 약의 부작용 때문에 정상인보다 더욱 고통을 받는 환자들이 측은하다.

'신의 저주를 받은 불쌍한 영혼'이란 낙인이 찍혔던 정신병자들에 대한 옛날 이야기가 맞는 말일까?

라마단은 무슬림 정신병 환자들에게 너무나 불공평한 종교의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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