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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손자와 마지막 낚시를…'

천양곡 신경정신과 전문의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한 TV채널에 눈이 멎었다. 화면은 록 뮤직 킹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지나간 무대 공연들 그의 음악과 인생을 엮은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있었다. 엘비스의 모습은 내 눈을 번쩍 뜨게 했다. 그렇지! 광화문 '초원'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엘비스 노래를 수없이 듣던 나의 젊은 시절이 생각났다. 과거는 지난 날의 고통을 잊어버릴 수 있는 장소지만 또한 아름다운 추억을 뽑아주어 현재의 삶을 살찌게도 해준다. 21세기로 넘어오며 정신과 병명들이 하나 둘씩 늘기 시작했다.

자기 전에 밤참을 많이 먹으면 야포식 증후군 노름을 너무 좋아하면 병적 도박증 여자 스커트를 계속 쫓아다니면 성적 충동증 무분별한 샤핑은 샤핑 충동증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으면 인터넷 중독증 알콜.담배.커피.약물중독… 등등이다.

새로운 병명을 창조하는 정신질환 연구원들이 이런 나쁜 버릇을 영상 촬영으로 관찰한 뒤 "뇌 어느 부분에 이상 변화가 생겼다"며 새로운 병명을 만들어내는 '의술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지나치게 골프에 흠뻑 빠진 사람도 정신병자로 몰릴 위험성도 있다.

얼마 전 셔츠 앞 포켓에 말보로 담배갑이 보이는 중년 남자가 산소통을 끌며 진료실로 들어왔다. 폐기종 말기로 우울증까지 겹친 환자였는데 담배는 그의 유일한 낙이요 벗이었다. 그는 간간이 헛기침에 이어 숨을 크게 들여마신 후 손으로 담배갑을 가리키며 "이것 때문에…" 하며 계면쩍은 웃음을 지었다.



"담배 끊을 생각 해보았어요?" "자식들은 그걸 원하죠." 그는 직접 대답을 피했다.

"자녀 분들이 아버지를 무척 생각하는 모양이죠?" "그런가 봐요."

"그럼 준비가 됐겠네요." 그는 어깨만 으쓱거렸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흡연률은 정상인보다 훨씬 높다. 그 결과 고혈압.당뇨병.폐기종 같은 만성 신체 질환도 잘 걸려 일반적으로 수명이 짧다. 이 환자같이 지금 죽어가는 사람에게 유일한 즐거움인 담배를 끊으라고 하는데 올바른 태도일까? 하나의 윤리적 문제에 직면하지만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게 의사의 소명의식이기에 술 끊고 담배 끊으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성직자가 죽어가는 불신자에게 "신을 믿고 가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다.

한달 후 환자를 다시 만났다. 산소통과 담배갑도 그대로였다.

"누가 뭐래도 난 담배를 피울 겁니다."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본인이 결정할 일이죠." 하고는 조용한 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어린 손자가 있나요?" "7살난 손자가 있습니다." "손자 데리고 낚시 가보셨나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런 적 없습니다."

"세상 뜨기 전 손자하고 낚시 한 번 해보셔야지요."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환자의 딸을 불러 아들이 할아버지에게 낚시 가자고 졸라보라 했다. 죽어가는 환자의 마지막 즐거움에 비교될 만한 것을 찾아내는 게 때론 도움이 된다.

그는 몇 주 후 숨을 거두었다. 가족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환자는 담배 끊고 손자와 함께 두 번이나 낚시를 갔다 왔단다.

정신과 의사는 보통 환자나 가족들에게 좋은 소리와 칭찬을 받지 못하는 의사 중 하나다. 어쩌다 샤핑몰.음식점.극장에서 맞부딪칠 때도 그들은 얼굴을 돌린다.

가끔 이 환자 케이스같이 칭찬을 듣기에 옛날 일은 다 잊어버리고 같은 일을 계속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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