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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500회, 박수 칠 때 떠납니다.

새벽 세 시,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진다. 한 번 눈 뜨면 두 번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나는 침실을 나온다. 강아지도 따라 나온다. 찬 물 한 잔을 마시고 커피를 내리면서 강아지 오줌을 뉘인다. 커피잔을 들고 가는 곳은 컴퓨터 방. 수백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이루마’의 피아노곡을 틀어놓고 책상에 앉는다. 직장 점심시간을 이용해 걸으면서 구상했던 소재들을 글로 옮기는 시간인 것이다.

500회를 끝으로 이 칼럼을 그만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장 큰 걱정은 앞으로 새벽에 잠 깨 컴퓨터 앞에 앉아도 할 게 없을 거라는 거였다. 한 여성 사이트에 꾸준하게 썼던 소설도 몇 년 전에 중단을 선언한 상태고 그나마 중앙일보 칼럼을 쓰면서 ‘글쟁이’란 명맥을 유지했었는데.

펜팔하고 있는 아랫동네의 할배. 그가 편지로 말했었다. 이계숙씨는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글로 다 풀어내니까 가슴에 쌓이는 것 없겠습니다….

그랬다. 보통은 혼자 삭이고 넘어가거나 주위 가까운 몇몇하고만 나누다가 잊어버리는 얘기들을 난 글로 남겼다. 칭찬하고 욕하고 자랑하고 비난하고 분개하고 싸우고 흉보는 일들을 글에 녹여서. 예전, 중앙일보의 한 지사장은 칼럼명 ‘살며 느끼며’를 ‘지지고 볶으며’로 바꾸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권유를 한 적 있다. 그만큼 내 글은 우리 이민자들의 삶, 바로 그 자체였었다. 독자 자신들의 얘기였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가 한 번쯤은 겪는 일들.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한 게 500회를 썼어도 소재는 끊임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내 머리속에는 무궁무진한 소재들이 떠 다닌다. 앞으로 5천회는 거뜬히 쓸 수 있을 만큼. 퍼내도 퍼내도 솟는 샘물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최무룡 김지미가 헤어지면서 남긴 말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많은 독자들이 내 글을 좋아해주기 때문에. 나를 성원해주기 때문에. 박수칠 때 얼른 떠나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15일, 가까운 사람들 및 내 열혈 독자 50명을 초대해 500회 기념 파티를 하려고 한다. ‘무대체질’이 아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마이크를 잡아야 할 것이다. 고별인사를 해야 할 것이다. 뭐라고 말 할까. 아직도 한참 더 쓸 수 있는데 괜한 결정 내렸지요라고 할까. 속이 다 시원하네요라고 할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지는 않을까.



이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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